[세계사] 기독교의 동서 분열 - 로마 가톨릭교회와 동방 정교회

종교에 관심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기독교의 동서 분열은 한번 정리할 가치있다고 생각했다. 기독교의 동서 분열은 기독교 역사상 11세기에 로마 가톨릭 교회와 동방 정교회가 상호 파문으로 분리된 사실을 말한다. 교회가 동서로 분열된 이유는 교리, 정치, 사회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된 결과우상 숭배 논쟁, 삼위일체 논쟁, 교권싸움으로 설명 될 수 있다.

로마 제국이 분열된 이후에 476년에 서로마 제국은 외적의 침입에 못이겨 일찍 망하게 되었고 동로마(비잔티움 제국)은 오랫동안 건재했다.
<그림1, 동서로 분리된 로마 제국의 영토 모습>

동방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의 분리는 -  '동서방 교회 대분열' -  당시 양측의 갈등은 매우 해묵은 문제이기도 했다. 로마 제국이 동서로 분열되기 전인 4세기 경부터 기독교의 주요 교구는 예루살렘, 안티오크, 알렉산드리아, 콘스탄티노플, 로마 등 등 제국 내 대도시를 중심으로 다섯 개가 있었다. 로마만 서방에 있고 나머지 4개는 동쪽에 있는 동방 교회였다. 동부 지역은 기독교의 발상지인 예루살렘과 가까운 만큼 기독교 세력이 서방에 비해 훨씬 컸다. 그런데도 로마 교구는 476년 서로마가 멸망한 이후부터 예수의 첫째 제자인 베드로가 순교한 점이라는 것을 내세우며 다른 교구에 비해 우월권을 주장했다. 또한 로마 교회 주교는 다른 교구의 주교들과 차별화하기 위해 점차 교황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484년은 로마 교황과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가 서로 파문을 하면서 동서 교회의 반목이 시작된 지점이다. 그렇게 조금씩 멀어진 동서교회는 11세기 중반에 절정으로 치닫게 된다. 1054년 동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9세의 초청으로 콘스탄티노플을 방문했던 로마교회 사절들이 콘스탄티노플 총대교주에게 파문장을 던지는 돌발적인 행동을 벌이고 만것이다. 그리고는 이틀 뒤 황제의 허가를 얻어 황제가 선사한 선물을 지닌채 귀환했다. 여기에 맞서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도 로마 교회는 기독교가 아니고 정통 기독교인 동방 교회와는 상관이 없다고 천명했다. 이로써 로마 기독교의 분열이 공식화된 것이다.

사실 그 당시에는 동서 교회은 서로의 파문을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곧 원만하게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해결되기 전에 동로마에 여러가지 시련이 닥치는 바람에 바로 잡을 기회를 놓치면서 동서 교회 분리가 영구화되고 말았다. 동방 정교회와 로마 교회가 싸우는 사이 외부의 여러 적들이 동로마 영토로 쳐들어오면서 혼란을 야기한 것이다.

그러면 왜 이러한 분열이 생기게 되었을까.

우상 숭배 논쟁
초기에 예수의 십자가 이외에는 어떤 성상도 허락하지 않았던 서로마는 외세의 침략으로 교회의 존립 자체를 위협받게 되었다. 그로인해 서로마는 게르만 민족의 종교 풍습인 우상 숭배를 받아들여 게르만 세력을 포섭하는 선택을 하였다. 이는 동방 교회의 강력한 반발을 일으켰다.

삼위 일체 논쟁, 혹은 단성론
서방교회는 신성은 아버지 하느님에게서 나오는 것이며 다른 예수는 단지 전달자라고 주장하였다. 이를 단성론이라고도 표현하는데 예수그리스도는 신적인 성질만을 가졌을뿐 인성은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교권 싸움
바로 교권싸움이다. 로마 교황 콘스탄티노플은 로마 교권이 점점 강해지면서 세계를 압도하였고 이와 동등한 위치에 있었던 동로마 대 주교가 굴복하지 않고 결국 분립하게 된것이다. 두 교권은 교회의 수위권 문제뿐만 아니라 교회 내부의 교리 문제(단성론이나 성상 숭배 문제 등)으로 인해 끊임없이 대립하게 되었고 11세기 중반 결국 서로가 서로를 파문하면서 갈라지게 되었다.

성상 숭배
8~9세기 동방 정교회에서 성화상(이콘) 공경이 금지되고 성상을 파괴한 '성상파괴운동'이 일어났다. 이 운동은 비잔티움 황제의 간섭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교황청에 좋은 명분을 제공하였으며, 다른 요인들과 함께 결국 동서 로마교회의 분열로 이어졌다. 십계명의 두번째 계명에 '우상을 섬기지 말라' 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서로마 교회 측에서는 무지한 야만인들에게 교세를 확장하기 위해 혹은 자신의 권력을 지치기 위해서 성상숭배는 불가피한 것이라 하여 비잔틴 제국 측의 성상 숭배 명령을 묵살하였다. 결국 1054년 7월 16일에 동서교회는 완전히 분열되게 되었다. 서로마에서는 교황과 황제가 대립하고 있었으나 동로마에서는 정치와 종교가 협력하고 있었다. 11세기에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는 로마 교회의 의식과 교리를 크기 비난였다. 교황 레오 9세는 콘스탄티노플에 화해 사절단을 파견했으나 이를 묵살하였다. (사실상 초기 서로마는 명백이 끊겼고, 신성 로마제국이란 다른 이름이 서유럽을 지배하고 있다.)

그리스 정교회는 유럽에서 크게 그리스를 중심으로한 그리스 정교, 발칸반도를 중심으로 세르비아 정교, 러시아를 중심으로 러시아 정교로 나뉘어졌다. 이 후 비잔틴 제국이 쇠잔하면서 러시아가 그리스 정교의 종주국이 되었다. (러시아 정교에 슬라브적이고 동방적인 요소가 가미되면서 러시아가 유럽사회에서 고립되는 하나의 요인이 되었다.)

이러한 '기독교의 동서분열' 논쟁은 11세기에 단일 기독교에서 로마 가톨릭 교회(서로마)가 이탈했다는 시각과, 교황과의 일치로부터 동방 정교회가 이탈한 것으로 이해되는 시각이 오늘날까지도 대립하고 있다.


<참고 문헌>
- 하룻밤에 읽는 서양사
- https://ko.wikipedia.org/wiki/%EB%8F%99%EC%84%9C_%EB%B6%84%EC%97%B4
- IS 지하디스트 그리고 이슬람, 곽영완
- 그림 1,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winlee96&logNo=220486921714&parentCategoryNo=&categoryNo=22&viewDate=&isShowPopularPosts=true&from=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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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IS 지하디스트 그리고 이슬람


IS 는 요즘 굉장히 뜨거운 이야깃 거리 주제이다. 그러나 사실 마냥 흥미롭기만 한 주제는 아니다. 중동에서 기원한 IS 라는 조직이 세계 곳곳에서 테러를 일삼고 있고 갈수록 사상자는 늘어나고 있다. 무서운 것은 IS 조직의 규모가 계속 커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어디에선가 본적이 있는데 IS 군대가 영국 정규군과 맞먹는 규모로 성장했다고 하니 그 속도가 매우 놀랍다.

나는 이들이 왜 이런 싸움을 하는지 궁금해졌다. 왜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지. 심지어 자기들의 목숨을 버리면서 자살테러를 하는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이들은 정말로 미치광이 테러집단인지 확인하고 싶어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사실 이 책 한 권만을 읽고 IS에 대해 정확히 이해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중립적인 시각에서 IS의 배경과 중동 문제의 뿌리에 대해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에 대한 입문으로는 충분히 괜찮다고 생각한다.

IS 는 이슬람권의 화려한 과거역사에 대한 동경과 그런 자신들을 갈취하고 있는 서구에 대한 증오에 의해 탄생한 조직이라고 볼 수 있다. 이슬람 세력은 17세기 중반 무렵까지만 해도 사회, 문화, 군사, 정치 등 대부분의 면에서 기독교 중심의 서구 사회보다 대등하거나 부강했다. 그러나 근대 나폴레옹의 침략을 기점으로 중동 전체는 서구의 식민지로 전락하였다.

20세기 초반 이슬람 사회안에서는 그 원인을 찾기 위한 변화의 노력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쇠락의 근본적인 원인을 이슬람 사회의 왕정 중심의 구시대적 정치 구조에서 찾았다. 그리고 서양 기독교 사회로부터 입헌제도를 비롯해 민주주의와 다양한 정치 제도를 도입해 이슬람 사회의 부흥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서구 열강의 침탈은 계속되어 석유 자원을 무기력하게 탈취당함으로써 이슬람 문화권은 더 큰 혼란 속으로 빠져들게되었다. 

그로인해 이슬람 부흥운동이 일어났다. 이는 이슬람 사회에 만연해 있는 외래적인 요소를 버리고 이슬람 정통 이상과 원리를 바탕으로 한 이슬람 국가를 재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원리주의' 라고 하는데 문제는 이 같은 원리주의 하에서 자라난 급진 무장 세력들이다. IS도 이러한 원리주의에 기반하여 초대 칼리프의 이름과 그 칭호를 부활시켜 이슬람권을 자신의 휘하에 다시 하나로 묶겠다는 강력한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다.

1,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는 중동의 석유의 지배권을 확보하여 많은 양의 석유를 침탈했다. 또한 언제나 그렇듯 강대국의 이익을 위해 약소국의 희생을 야기했다. 대표적인 예가 팔레스타인 사태, 시리아 분쟁, 이라크 전쟁 등이다. 서구 강대국의 개입으로 중동의 혼란은 이슬람주의 무장 세력들을 결집시켰고 현재 IS탄생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여태까지 그랬던 것 처럼 무력으로 진압하는 것은 현명한 대안이 되지 않을 것이다. 서구가 힘으로 IS 를 진압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또 다른 그리고 더 큰 무장세력을 낳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지금과 같이 그들의 행위에 대해 비난만 하기 보다는 왜 그들이 저런 테러를 자행하는지 생각해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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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변신, 프란츠 카프카



프란츠 카프카의 역작, '변신' 을 드디어 읽었다. 솔직히 말하면 읽은지는 몇 달 전이지만 서평을 쓰고 싶어서 다시 책 내용을 더듬어보았다.

'변신'은 아침에 일어나보니 벌레로 변해버린 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떻게 그럴수 있지?' 라는 생각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벌레로 변한 주인공의 앞으로의 삶이다. 그는 이러한 황당한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 일 것인가. 그리고 둘도 없이 소중한 그의 가족은 그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이것은 흔한 막장드라마가 아니다. 너무나 사실적이며 현실감있지만 덤덤한 우리네 세계의 이야기이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그는 아침에 일어나서 바뀌어버린 자신의 몸을 발견했다. 해괴한 손과 발 그리고 머리 위로 보이는 더듬이는 그를 경악하게 만들었지만 대단하게도 그는 이내 곧 평정심을 되찾았다. 침착함이 몸에 밴듯하다. 그는 침대 밑으로 내려오다가 뒤집어졌다. 여느 벌레가 그렇듯 짧은 다리로 몸을 스스로 뒤집는 것 조차 그에게는 곤욕이었다. 그는 꽤나 효자인 듯 하다. 충분히 자신이 처한 상황에 절망 할 수도 있음에도 그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이 문 밖을 나갔을때 부모님 그리고 여동생이 얼마나 놀랠지 걱정한다. 그렇다. 그는 어제까지만 해도 집안 전체를 먹여살리는 가장이었다. 그가 가족을 어떻게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들의 안위를 위해 자신을 희생 시킨것만은 사실이다.

가족들은 처음에는 벌레가 된 아들, 그리고 남동생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 꾸준이 밥도 챙겨주고 방청소도 열심히 했다. 그러나 이내 모든 것이 시들었다. 청소를 자주 하지 않아서 집안에서 악취가 났고 방의 가구를 모조리 빼버려서 창살없는 감옥이 되어버렸다. 누가 볼까 두려워 아들의 존재를 숨긴채 문을 잠궈놓기 일쑤였다. 그저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는 것은 아들의 흉칙한 모습 뿐이었다.

주인공은 자조했다. 가족에게 외면받고 정말 '벌레'로서의 취급을 당했다. 결국 홀로 방안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한다. 아무도 그의 죽음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오히려 죽은뒤 홀가분함을 느끼는 '가족' 이 그의 빈자리를 대신했다.

누가 이들을 원망 할 수 있을까. 이들 '가족' 처럼 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생각해보면 결국 '가족'이라는 가장 끈끈한 혈연 조차도 필요에 의해서 맺어져 있는 관계가 아닐까. 그러나 모성애를 생각해보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든다. 그러나 또 다시 고민해보면 자식이라는 존재를 통해서 '엄마'란 존재가 행복감을 느끼기 때문에 이 역시 '필요에 의한', 나아가 '자신의 이익을 위한' 관계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이 놀라운 이유는 놀랄만큼 덤덤하게 우리네 현실을 묘사했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이 들' 이었거나 '이 들' 일 것이다. 한번 쯤 생각해 볼만한 문제 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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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9 LIGHTS IN 9 ROOMS _ SPATIAL ILLUMINATION


디뮤지엄에서 '아홉 개의 빛, 아홉 개의 감성' 이라는 주제로 전시회 개관했다.

빛으로 이런 아름다움이 표현 될 수 있구나 라는 감탄을 실컷 하는 시간이었다.  




You see yourself in the light, and the light in yourself
빛에서 자신을 발견함과 동시에 자신의 내면에서 빛을 발견하다.
- 플린 탈봇, Flynn Talbot




작품명 : 빛의 그림자를 그리다

이처럼 그림자에 색깔이 입혀진 모습은 처음봤다!
이 아름다운 그림자를 가지고 놀았다.

작품명 : 빛의 바람을 느끼다 

'마치 종이들이 일순간 바람에 의해 창 밖으로 쏟아져 하늘로 휘날리는 듯한 풍경을 연출하며, 테크놀로지가 선사하는 우아함과 즐거움을 보여준다

작품명 : 빛의 시간으로 빠져들다

선과 기하학적 형태들이 반복적으로 나타나 겹치고 해체되면서 양파 껍질 같은 다층의 시각적 조합을 만들어내는 영상 속 빛을 통해, 새로운 차원의 공간 속으로 빠져드는 경험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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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서] '스마트 기기 이용행태 실증분석, 2011년 12월, 정보통신정책연구원'

* 본 내용은 '스마트기기 이용행태 실증분석' 을 읽고 학습 목적으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혹시 문제가 된다면 즉시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스마트 기기 이용행태 실증분석, 2011년 12월,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요약

본 연구는 스마트 환경으로의 패러다임 변화를 분석하고, 패러다임 변화에 따른 소비자들의 이용행태에 대한 다양한 분석을 시도함으로써 스마트 환경에서의 정책 수립 시 유용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에 문서작성자는 이러한 연구를 분석하고 아래의 목차에 맞게 구성하여 정리하려 한다.

[요약 목차]
- 스마트 기기의 정의
- 스마트 디바이스에 의한 영향
- 경쟁력 있는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정치적 대안
- 정리

가. 스마트기기의 정의
Vasseur and Dunkels(2010)은 스마트 기기를 기술적인 관점에서 센서나 액추에이터(actuator), 마이크로프로세서, 통신기능, 전원으로 구성된 기기로 정의하였다. 또한 스마트기기를 중요한 기능적인 패턴인 커뮤니케이션에 따라 “제한된 연산(능력)-전원, 소형, 낮은 비용으로 물리적인 실제 세계와 상호 작용하고, 외부 세계 및 다른 스마트 개체와 통신할 수 있는 기기”로 설명하였다.
하지만 이와 같이 스마트 기기를 기술적인 하드웨어 관점에서만 바라보면, 그 정의와 범위가 협소해지는 단점이 있다. 현재 스마트 기기에서는 OS 플랫폼과 하드웨어 간의 전략적인 결함을 통하여 기기의 전략적인 결함을 통하여 기기의 성능을 높이거나 기기와 관련된 다양한 모델들이 생겨나고 있다. 따라서 소프트웨어(OS 플랫폼), 서비스, 네트워크 콘텐츠 등이 연계되는 생태계적 관점에서 스마트 기기의 개념과 정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에 따라 본 연구에서는 스마트 기기를 네트워크 기능이 탑재되어 인터넷 접속이 가능하며 OS 플랫폼을 통해 제공되는 다양한 기능 및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기기로 정의하였다.

나. 스마트 디바이스에 의한 영향
스마트폰, 태블릿 PC, 스마트 TV와 같은 다양한 커넥티드 기기의 등장으로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콘텐츠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스마트한 환경은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스마트 기기의 등장은 기기 자체 만으로는 경쟁력을 확보하기 힘들며 소비자가 원하는 콘텐츠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콘텐츠, 플랫폼, 네트워크 기기가 조화를 이루는 생태계의 조성 여부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장 구조의 변화를 가져왔다. 다양한 콘텐츠가 공급되는 플랫폼 위에서 소비자가 편하게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는 기기만이 스마트 환경에서 선택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사업자들은 스마트 환경에서 자신이 중심이 되는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협력적 경쟁을 치열하게 전개하고 있다. 기기는 이제 더 이상 기기 자체로 의미를 갖지 못하며 기기 간 경쟁이 아니라 생태계 경쟁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스마트기기의 등장은 이동통신 시장의 변화 뿐만 아니라, 출판, 방송 등의 미디어 시장을 변화시키고 있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콘텐츠이다. 스마트 기기의 등장으로 콘텐츠와 소프트웨어의 경계를 구분 짓는 것은 어려워지고 있다. 또한 클라우드 기반의 서비스가 증가하면서 콘텐츠와 소프트웨어의 경계를 구분짓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콘텐츠의 변화와 함께 플랫폼 시장에서는 페이스북, 아마존, 구글, 애플과 같은 웹 플랫폼이 크게 부상했으며, 그 외에도 수많은 플랫폼들이 생겨나고 있다.

다. 경쟁력 있는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정치적 대안
그렇다면 경쟁력 있는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무엇보다도 콘텐츠, 플랫폼, 단말기와 같은 생태계 구성요소의 다양성 확보가 중요하며 다양한 생태계 구성요소간 동반 성장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생태계의 주도권은 달라질 수 있지만 생태계의 중심은 항상 이용자가 위치하므로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이용자를 중심으로 한 전략 및 정책이 필요하다. 본 연구자료에서는 이러한 스마트 기기 기반의 환경에서 경쟁력 있는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정치적 대안을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1) 플랫폼 경쟁력 제고
소비자들은 스마트 기기를 선택할 때 OS를 중요한 요인으로 고려하고 있다. 모바일 OS는 이미 Ios와 안드로이드가 시장을 양분하고 있으며 기 구축된 네트워크 효과 때문에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OS를 뒤집는 것은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플랫폼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어떤 플랫폼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라는 정책적 판단이 요구된다. OS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웹 애플리케이션으로의 변화, 브라우저 기능 강화 등이 그러하다. 직접적인 OS개발을 위한 지원 보다는 개발자를 비롯한 시장 플레이어들이 동반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 조성과 소프트웨어 기초기술에 대한 정책적 지원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현재 국내의 경우 네트워크와 디바이스에 경쟁력이 있으며, 콘텐츠와 플랫폼의 경쟁력은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네트워크와 디바이스의 경쟁력을 폴랫폼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2) 공정경쟁과 신규 서비스 활성화를 위한 규제 체계 정비
인터넷 및 모바일의 영향으로 전통산업의 소프트웨어 플랫폼화가 진행되고 있으므로 이들 플랫폼이 글로벌 기업들과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예를 들면 우리날 콘텐츠의 글로벌 진입이 용이하도록 하기 위해 해외 이용자들이 우리 플랫폼에 쉽게 가입할 수 있도록 웹플랫폼의 가입 및 이용절차를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OTT를 비롯한 새로운 유형의 방송유사서비스의 등장을 방송규제의 테두리 안에서 규제하기 보다는 글로벌 서비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여야 한다.

3). 안전하고 자유로운 스마트 기기 이용환경 구축
SNS, 및 검색 기술이 발전하면서 개개인의 위치는 물론 어떠한 콘텐츠를 소비하는지와 같은 구체적인 개인정보가 실시간으로 드러나면서 개인 정보 침해 이슈가 제기되고 있다.
편리한 서비스의 이용 및 혁신적인 신규 서비스 개발을 위해서는 다양한 개인의 정보 분석이 필수적이므로 과도한 수준의 개인정보보호는 스마트 시대에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스마트 환경에서의 서비스의 대부분은 웹을 기반으로 전 세계적으로 제공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고려하면 국내에만 보다 높은 수준의 규제를 적용하는 것은 글로벌 서비스와의 공정한 경쟁을 저해할 수 있으므로 국제적인 규제 흐름과 조화되는 정책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라. 정리
스마트 환경으로의 패러다임 변화에 얼마나 잘 대처하는지에 따라 우리 기업은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수도, 외국의 글로벌 기업에게 시장을 빼앗길 수도 있다. 본 연구를 통해 스마트 환경의 패러다임 변화를 분석하고, 이용자의 행태에 대한 분석 및 정책 수립 대안을 제공하였다.

기초 문헌
-  '스마트 기기 이용행태 실증분석, 2011년 12월, 정보통신정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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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마그나 카르타 / 권리청원 / 권리장전

영국에서 발생한 마그나 카르타 / 권리 청원 / 권리 장전은 헌정사상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의회 제정법이다. 이와 같은 역사가 기반이 되었기 때문에 오늘날 영국이 선진국으로서 세계를 호령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훗날 전세계에 영향을 미칠 그들의 역사에 깊게 감탄을 표한다. (물론 영국이라는 선진국을 일방적으로 무비판적으로 옹호 것은 아니다.)

마그나 카르타
마그나 카르타 혹은 대헌장은 1215년 6월 15일에 영국의 존 왕이 귀족들의 강요에 의하여 서명한 문서로, 국왕의 권리를 문서로 명시한 것이다. 왕에게 몇가지 권리를 포기하고, 법적 절차를 존중하며, 왕의 의지가 법에 의해 제한될 수 있음을 인정할 것을 요구했다.
국왕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문서화하기 시작하여 전제 군주의 절대 권력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흔히 영국 민주주의의 시발점으로 강조되는 것과 달리, 문서 자체에 민주적 요소는 없다.

마그나 카르타로 인해 왕의 권한은 크게 줄어들었고 귀족의 성직자들의 권리는 크게 늘었다. 이는 곧 의회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마그나 카르타는 원래 고위 귀족신분만을 위한 문서였으나 후대에 가서는 시민들에 대한 것으로 확대되었다.


권리 청원
1628년에 영국의회가 찰스 1세의 승인을 얻은 국민의 인권에 관한 선언으로 권리장전이 명예혁명의 결과에 의한 인권선언의 성격을 띤 데 반해, 권리청원은 청교도 혁명과 관련된 인권선언이다.

찰스 1세는 왕위를 계승한 이래 프랑스, 에스파냐와의 잦은 전쟁으로 그 비용을 강제기부나 상납금에 의존하였다. 따라서 국내 불만은 갈수록 고조되었고, 하원의원 에드워드 코코 등이 중심이 되어 국왕에게 청원하는 형식으로 국민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권리선언을 한 것이다. 

주 내용은 의회의 동의 없이는 어떠한 과세나 공채도 강제되지 않는다는 것, 법에 의하지 않고는 누구도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않는다는 것, 각종 자유권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특별세 승인을 필요로 한 찰스 1세는 마지못해 재가했으나, 1629년에 의회를 해산시키고 11년간 의회를 소집하지 않고 전제정치를 단행하여 청교도 혁명의 원인을 제공하였다.

권리 장전
청교도 혁명 왕정복고하여 즉위한 찰스 2세는 즉위가 없었다. 찰스의 동생 요크 공 제임스가 주목받고 있었다. 제임스는 로마 가톨릭 신자였다. 그러나 영국은 종교개혁 이후 성공회가 국교인 상황이었다. 다수의 시민들은 로마 가톨릭을 심봉하는 국왕을 맞이하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이 있었다. 

결국 제임스 2세가 왕위에 올랐으나 제임스는 시대착오적인 전제정치를 감행했다. 결국 1688년 명예혁명이 일어나 제임스 2세는 프랑스로 쫓겨나고, 의회는 제임스 2세의 딸 메리와 남편인 신교도 오렌지 공 윌리엄을 공동 추대했다. 1689년에 영국 의회는 윌리엄 3세에게 즉위의 조건으로 권리장전을 승인시킨다. 왕이 의회의 승인없이 법의 정지·과세·군대의 징모 등을 하지 않을 것, 의회의 자유 승인 등을 주 내용으로 한다. 영국 의회정치 확립의 기초가 된 이러한 권리장전은 영국의 절대주의를 종식시켰다는데 큰 의의가 있으며, 후에 미국의 독립이나 프랑스 혁명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선왕 제임스 2세는 자신이 등용했던 사악한 몇몇 고문관과 재판관과 각료의 조언을 받아들여, 신교와 우리나라의 법률과 자유를 파괴하고 말살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다. (중략)
5. 모든 신민은 국왕에게 청원할 권리가 있으며, 그러한 청원 사실을 구실로 삼아 수감하고 기소하는 조치는 불법이다.
6. 의회의 동의 없이 평화시에 국내에서 상비군을 징집하고 유지하는 조치는 불법이다.
- 권리장전 중

내용을 정리하고 생긴 궁금증은 "권리 청원과 권리장전 내용의 차이점이 무엇인가" 라는 것이었다. 
- 권리청원이란, '국왕을 상대로하여 권리를 주장 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장된 청원제도' 이다.
- 권리 장전이란, '국왕이나 정부가 국민이나 의회 등의 권리를 보장해 주는 법전'을 말한다.
- 청원은 언제까지나 청원일 수밖에 없고, 권리장전을 통해 실제 법이 제정되고 공표될 수 있다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참고문헌
- https://ko.wikipedia.org/wiki/%EB%A7%88%EA%B7%B8%EB%82%98_%EC%B9%B4%EB%A5%B4%ED%83%80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720335&cid=47336&categoryId=47336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068130&cid=40942&categoryId=31720
- http://cafe.naver.com/lcjcc/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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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 사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분쟁에 대해서는 누구나 한번쯤 매체를 통해 접해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왜 그리 싸우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사실상 분쟁보다도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학살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압도적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힘없는 팔레스타인은 계속 죽어가고 있다. 나의 글을 통해 이 분쟁의 해결에 그리고 팔레스타인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더할 나위없이 행복하겠다.

- 현재 상황 - 
현재 대부분의 국토를 이스라엘에 빼앗긴 팔레스타인들은 '가자 지구' '웨스트 뱅크(서안 지구)'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아래 사진 참고) 자치 정부를 꾸리고 있기는 하지만 경제적 기반이 없어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에 대부분 의존하여 연명하고 있다. 또한 이스라엘이 세운 분리장벽으로 인해 '하늘에 뚫린 거대 감옥' 속에서 힘들게 생활 하고 있다.
출처 : http://goo.gl/cZQ2Kz

'가자 지구' 와 '웨스트 뱅크' 는 각각 다른 정당이 이끌고 있다. '웨스트 뱅크'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공존할 수 있다는 의견의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PLO) 계열 정당'의 파타(PATAH)가 이끌고 있으며, '가자 지구'는 3 NO ( No recognition, No peace, No negotiation) 를 주장하는 하마스(HAMAS)가 정당을 이끌고 있다. 때문에 지금 이순간에도 하마스는 끊임없이 이스라엘 뿐만아니라 이들을 지지하는 다른 나라들과도 충돌을 하고 있다. 어디서 부터 잘못된 것일까.




- 분쟁 발단 -
약 3000년 전 팔레스타인 땅에는 에게해 지역에서 온 이주민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모세가 이끄는 유대 민족이 이들을 쫓아내고 땅을 차지한 후 이스라엘 왕국을 세웠다. 그러나 이스라엘 역시 기원후 70년에 로마 제국에 의해 멸망당했다. 이 후 이스라엘 사람들을 쫓아낸 로마가 무너지자 아랍 민족인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 땅에 들어와 살게되었다.

1800년대 후반 즈음,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던 유대 인들 사이에서 팔레스타인 땅을 되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이를 시온주의라고 한다. (시온은 이스라엘 예루살렘 성지에 있는 언덕을 가리킨다.) 제1차 세계 대전 즈음에 심해진 박해 때문에 시오니즘은 점차 유대인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가나안(팔레스타인) 지역의 주인은 자주 바뀌었다. 근현대에 이르러서는 오스만 제국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통치하게 되었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멸망되어 분해되었고, 이 후 영국이 오스만 제국이 통치하던 지역을 위임하여 통치하게 되었다.

1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역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두 가지의 약속을 하였다. 아랍인들에게는 영국군을 지원하여 싸워주면 독립 국가를 세우게 도와주겠다는 약속하였고 - '맥마흔 선언', 유대민족에게는 금전적, 과학적인 원조에 대한 대가로 이스라엘에 유대인의 독립국가를 수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 '밸푸어 선언'. (폭약 제조 과학자 '바이츠만'이 영국 외무상인 '제임스 밸푸어'에 직접적으로 독립국가를 요구했다고 한다.) 중요한건 밸푸어 선언은 아랍의 독립 국가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지지한다는 맥마흔 선언에 명백히 위배되는 모순된 선언이라는 것이다. 

폐하의 정보는 유대 민족을 위한 국가 본거지를 팔레스타인에 수립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찬성하며, 이러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 1917년 영국의 외무장관 제임스 밸푸어 , 밸푸어 선언(Balfour Declaration)

밸푸어 선언으로 인해 두번의 세계대전 기간 동안 세계 각지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유대인의 대량 이주를 불러 왔으며, 반면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자신들의 땅에서 추방되도록 하였다. 또한 그때까지 세계 곳곳에 있는 유대인들 사이에서 조차 많은 지지를 받지 못했던 시오니즘에 대하여 합법적인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그리고 영국은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과 유대인들과의 분쟁이 점차 확산되자 이 문제를 UN에게 상정하였다.

1947년 11월 29일 제 2차 UN 안보리 총회에서 이스라엘을 국가로서 승인하는 일을 추진하였다. 이때 UN이 제의한 것이 팔레스타인 분할안이다. 이에 팔레스타인은 연방안을 제안하였다. 연방안은 팔레스타인 연방제 안에서 아랍인과 유대인 각각 민족, 정치적 자치를 하도록 하는 방법이고 분할안은 말그대로 토지를 분할하자는 것이다. 보다 현실적이었던 연방안은 강대국 주도의 분할안이 유대인의 로비를 받은 미국의 주도하에 통과되면서 무산되었다.

분할안에 따라 팔레스타인은 아랍과 유대로 반분되었고, 인구나 보유 토지 비중이 현저히 낮은 유대인이 유리한 지위를 차지했다고 생각하게 된 아랍인들이 반미정서를 강하게 가지게된 계기가 되었다. (당시 유대인의 토지는 6.6% 정도였으나 분할되고 나서는 팔레스타인 전체 토지의 56%를 차지하고 아랍인은 44%을 차지하게 되었다.)

- 이스라엘 국가 수립 결정 - 
결국 국가 수립이 결정되고 땅까지 분할되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영토가 된 땅에는 여전히 팔레스타인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조상 대대로 2천년 동안 살던 땅을, UN의 결정으로 그리고 불합리한 조건의 안건의 통과로 인해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받아들이고, 세금을 내고, 체제 안으로 들어가든지 아니면 고향을 떠나든 선택하여야만 했다. 유대인은 이들이 쉽사리 떠나지 않자 잔혹한 방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 시온주의자들의 테러와 학살 -
이르군 (Irgun)과 레히 (Lehi) 라는 유대폭력 조직들이 주도해서 극단적인 계획을 세우게 된다. 이른바 디 (D) 플랜이라고 불리우는데, 이들은 마을 단위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1948년 4월 9일, 독립 한 달 전에 자행한 데이르 야신(Deir Yassin) 마을 학살 사건이다.

144가구 마을 전체 인구가 400여 명인데, 그날 밤 마을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잠자던 주민 256명이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졸지에 닥친 살육에 도망 못 간 아이들과 여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확인 사살을 하고, 집에는 다이너마이트를 터트려 초토화시켰다. 하룻밤 사이에 마을 하나가 완전히 도륙당한 셈이다. 새벽에 시작된 살육 행진은 정오경에 모두 끝이 났다.
- 이슬람학교2, 이희수
한달 사이에 20여 개의 오아시스 마을들이 이런식으로 사라졌다. 효과는 확실했다. 400여개의 마을에서 100만명에 달하는 팔레스타인이 레바논과 시리아로 도망갔다. 이것이 팔레스타인 난민의 시작이다.

- 이스라엘 독립선언, 그리고 중동 전쟁 -
벨푸어 선언 30년 후, 유대인은 결국 기존에 팔레스타인에 살고 있던 수많은 아랍인들을 힘과 폭력으로 쫓아내고 1948년 5월 14일에 이스라엘 독립을 선언하였다. 당시 아랍은 하나의 민족 공동체의 성격을 띄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 국가들의 강한 반발을 사게되고, 결국 이스라엘에 전쟁을 선포하게 되었다.

1차 중동전쟁은 이집트, 요르단, 이라크, 레바논, 시리아 등 군대가 동원되어 대규모 전쟁으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2차 대전시 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이 이스라엘을 적극 지원하였다. UN의 휴전결의 채택으로 전쟁은 중지되었지만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영토의 80% 를 확보하게 되었다. 뒤이어 발생한 2,3,4 중동전쟁 역시 아랍인들이 패배하면서 이들에게는 치욕스러운 역사로 남게 되었다.

이러한 복잡한 역사가 기반되어 팔레스타인은 물론이고 아랍인들은 서구에 대하여 원한을 품게 되었다. 또한 수십 년 동안에 걸친 유혈사태가 팔레스타인 땅에서 계속되는 사태의 발발을 기원했다. 2천 년동안 조상대대로 살아온 팔레스타인 민족은 이제 나라의 대부분을 잃어버린 불쌍한 민족이 되어버렸다. 아랍권의 붕괴로 인해 팔레스타인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도와주지 않는 '국제 고아'가 되고 말았다.

조지 안토니우스는 '아랍의 각성' 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류가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을 망각하는 날이 온다면 인류 문명의 종말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함께 살아왔던 다른 민족에게 그 죄과를 전가시키는 또 다른 나치 학살극을 행하는 것은 어떤 도덕적 명분으로도 받아들일 수 없는 또 다른 인류의 비극이다.





<참조문헌>
-  https://ko.wikipedia.org/wiki/%EB%B0%B8%ED%91%B8%EC%96%B4_%EC%84%A0%EC%96%B8
- 뉴스스퀘어, http://www.newsquare.kr/issues/232
- http://blog.naver.com/kbs4547/220297661315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72294&cid=43667&categoryId=43667
- 이슬람 학교1,2, 이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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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인도 카스트제도

12억 인구의 '인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카스트제도' 에 대한 이해가 우선적으로 수반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카스트제도는 인도에서 수년천 동안 유지되는 계급제도이다. 세밀히 공부하면 할 수록 카스트제도는 없어져야 할 끔찍한 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1. 카스트 제도는 무엇인가?

카스트 제도는 세계의 수 많은 전근대 사회에서 나타났던 문화∙사회적 현상으로, 일정 신분계층 집단의 지위를 자손 대대로 세습하도록 하는 제도다. 신분의 분류는 주로 집단의 경제력, 정치적 권력, 사회 문화에 기인되어 이루어진다. 특별한 정변이 일어나거나 개인적 능력이 매우 우수하지 않는 한 계층이동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인도에서는 1947년 법적으로 카스트제도를 금지하였지만 여전히 많은 인도인들은 카스트제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놀라운건 인도 뿐만 아니라 다른 일부 국가에서도 카스트제도의 풍습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 수가 대략 2억 5000만 명 정도라고 한다. ( 인도 및 다른지역의 카스트 제도 확인 )

인도라는 나라는 카스트제도를 통해 유지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약 6000년 전 카스트제를 적용한 이후, 현대에 이르면서 카스트제도는 인도의 발전을 가로막는 고질병이 되었다. 인도의 카스트 계급은 아래와 같이 4개의 계층으로 분류된다.

계층 명칭
종사 직업
사회적 업무
브라만
성직자학자승려 등
사회인의 교육과 힌두교의 신들에게 기도를 드리는 일
크샤르티아
무사군인 경찰관 등
사회 제도와 안보를 유지하며 국가를 통치하는 일
바이샤
상인수공업자연예인 등
생산 활동과 관련된 일
수드라
농민노동자 등
육체 노동과 관련된 일

천민 계급인 수드라는 다시 수많은 계급으로 나뉘어지는데 이 중에서 가장 낮은 계급이 바로 불가촉천민(untouchables)이다. 이들은 악마, 악귀 등 사회악으로 취급받으며 보통 힘든 일을 하거나 가축을 다루는 일, 시체를 다루는 일, 구식 화장실의 변을 정리하는 일 등의 더러운 일을 하기도 한다.

또한 불가촉천민는 사회적으로 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서 격리 수용된다. 사는 지역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그들이 사용하는 우물조차 격리되어 있다. 이들은 다른 계급들과 같은 우물을 쓸 수 없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아침 일찍 일어나 우물을 길러야 한다. 만약 이들과 다른 계층인들과 신체적 접촉이 발생할 경우(심지어는 인도의 4대 카스트 중 최하위라는 수드라와 신체적으로 접촉해도 마찬가지) 큰 죄로 다스리게 되고 심지어 이 사유로 이들을 죽일 수도 있다.

2. 인도 카스트제도는 언제 그리고 어떻게 형성되었나?

BC1000 년 경 유목민이 었던 아리아인들이 철기를 내세우며 겐자스 강 유역을 침략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정복전쟁을 통해 기존 인도북구에서 생활하던 원주민(드라비다인) 들은 아리아인들에게 지배당했다. 아리아인들은 키가 크고, 눈이크고, 피부는 비교적 희고, 비교적 균형잡힌 체격을 가지고 있었고 자기들 스스로를 '고귀하다'고 자칭하는 등 우월주의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우월주의는 곧 정복전쟁을 통한 우월성의 증명으로 발전했고 인도전역은 아리아인들의 수중에 들어갔다.

상대적으로 소수였던 아리아인들이 다수의 드라비다인을 효과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계급제도 즉 카스트제도를 적용하게 되었다. 원주민들과 혼혈 뿐 아니라 식사하는 것까지 금하고자 종교의 이름을 빌려서 제도화 시키게 되었다.
다른 목적으로는 분업이다. 즉 성직자, 무사, 경찰관 등 각각의 일을 사람들이 전문적으로 맡아서 하게끔하기 위한 것이었다. 같은 카스트인 사람들끼리 결혼하게 한 것도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결혼하였을때 서로간의 이해를 바탕으로 더 큰 시너지 효과가 나올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수한 목적으로 시작했던 카스트제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뜻이 변질되어 오늘날에 이르렀다.

3. 왜 카스트제도는 붕괴되지 않고 지금까지 유지되는가?

카스트제도는 오랜 세월 동안 인도인들의 삶에 뿌리 깊게 자리매김해왔다. 카스트가 이렇게 오랜 세월 인도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은 '현생에서 충실히 선을 쌓고 최선을 다해야 다음 생에 더 나은 신분으로 태어난다' 는 힌두교의 교리 (윤회사상) 때문으로 해석된다. 반대로 '내가 지금 이 계급으로 태어나 살아가고 있는 이유는 전생에서 내가 이 계급으로 태어날 만큼의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가 지금 이 삶에서 충실하고 이 계급에 맞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다음 생에 더 높은 계급으로 태어나 살게 될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즉 카스트 제도로 차별을 받는 사람도, 차별을 하는 사람도 이 차별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한 정치, 경제 측면에서의 기득권이라고 할 수 있는 상층 카스트들이 하층 카스트에 대해 고려하는 비교우위 역시 카스트제도의 붕괴를 지연시키는 하나의 요인이 되고 있다.

4. 인도는 현재 어떤 모습인가?

인도에서는 심각한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최우선의 가치로 여겼던 신분을 내려서라도 취업과 경제적 지원을 받겠다는 시위가 벌어진 만큼 시장논리와 자본주의가 카스트 제도의 붕괴를 초래하고 있다.

최근 인도 정부는 카스트 제도의 중간 계급에 속하는 카트 카스트 계급 주민들이 정부의 하층 카스트 우대 정책에 항의해 시위를 일으켰다. 공무원 임용과 대학생 선발 등에서 50%의 인원을 하층 계급에 할당하는 정부 정책이 역차별이라고 주장했다.


<참고 문헌>
- http://www.voakorea.com/content/article/3223004.html
- http://kiss7.tistory.com/446
- https://ko.wikipedia.org/wiki/%EC%B9%B4%EC%8A%A4%ED%8A%B8
- http://blog.naver.com/unckor/40201489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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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Feel alright - 짙은

지친 내 맘을 위로해주는 것 같은 노래. 
무엇을 해도 크게 기쁘지 않고 무던해진것 같은 요즘.
머리로는 걱정 근심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계속 무언가에 대해 걱정하는 요즘이다. 
아직 사춘기 인가보다.
ps. 짙은 노래는 다 좋다. 



Feel alright - 짙은
먼 거리를 걷다 지친 마음이
어둠속에 눈물을 감추고
어디선가 다친 상처들이
벌거벗은 채 세상을 만날 때

You make me feel alright
You make me feel alright
고단한 하루의 끝에 서 있을 때
You make me feel alright
You make me feel alright
시간의 틈에서 머물 수 있도록

시린 겨울 메마른 입술엔
침묵은 갈라져 가고
머물러 주었던 그 손길들
하나 둘 떠나가는데

You make me feel alright
You make me feel alright
고단한 하루의 끝에 서 있을 때
You make me feel alright
You make me feel alright 
시간의 틈에서 머물 수 있도록

오, 어둠 속에
오, 널 잃고 헤매던
많은 밤, 잠들 수 없었던
두렵던 밤의 끝에
You make me feel alright
You make me feel alright
고단한 하루의 끝에 서 있을 때
You make me feel alright
You make me feel alright
시간의 틈에서 머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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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Me

읽고, 쓰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또한, 나와 삶 그리고 세계에 관심이 많습니다. 저의 꿈은 사회, 경제, 역사, 철학 그리고 정보기술(IT)와 같은 다양한 범주에서 지식을 수집하는 '지식 수집가'가 되어 세상을 이롭게 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만일 대현인이라는 자가 이 세상에 있다 해도, 그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음을 오히려 따분해 하지 않겠느냐. 그는 발견하는 보람이나 새로운 것을 배우는 즐거움을 더 이상 맛볼 수 없지. 그 맛을 알고자 하는 우리 모두에게는 그것이야말로 가장 큰 삶의 보람일 텐데."
- 네로의 '세계사 편력' 중에서





저는 IT 회사에서 정보보안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정보보호 관리체계 프로세스를 수립하고 정보보호 인증(ISMS, ISO27001, BS10012) 취득을 지원하는 컨설팅 직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또한, 상급기관 스탠다드 및 정부 정책 등을 원활히 준수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개인정보 관리사(CPPG) 자격을 취득하였고, 기업을 대상으로 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 법률 컨설팅을 수행합니다. 기업이 법적 준거성을 확보하는 데 필요한 조치사항을 원활하고 효율적으로 이행할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유닉스 및 윈도우즈 시스템을 구축하고 보안시스템 (F/W, IDS, IPS)를 운영합니다. 원하는 결과를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목적을 달성하게 되는 과정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IT 거버넌스에 관심이 많습니다. 상당히 많은 회사가 IT 부서를 그저 예산만을 축내는 비생산적이고 고지식한 부서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한 원인은 얼마 전 읽은 'IT거버넌스'라는 책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1980년대 즈음, 회사에게 IT 기술은 대량 생산라인이 산업혁명을 초래한 이래로 가장 흥미로운 분야였습니다. IT는 회사에 자동화라는 놀라운 선물을 계속해서 안겨주었습니다. 그렇다면 회사는 IT에게 무엇을 주었을까요? 우선 회사는 '그들'에게 '돈'과 '재량권' 주었습니다.

처음 IT 업체들이 등장했을 때 회사가 그들에게 준 백지수표는 회사의 전체 예산에서 아주 작은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컴퓨터 자동화로 수작업 공정을 대체하여 벌어들이는 이익이 더 컸기 때문에 투자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버린 막대한 IT 비용으로 인해, 회사 경영자들은 컴퓨터 기술 투자비용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고, 이른바 '우리 그리고 그들'의 관계는 가장 먼 사이가 되었습니다.

20년 이상 IT 기술에 돈을 펑펑 쓰고 난 후에야 회사는 자신이 IT에게 주었던 백지수표와 재량권으로 인해 대규모의 복잡한 컴퓨터 환경이 조성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IT 거버넌스, 비즈니스 목표 달성을 위한 IT 전략, 스티브 로메로

저는 IT 부서가 이러한 부정적인 시각에서 벗어나서 핵심가치를 창출하는 '떳떳한' 팀이 되기 위한 방법론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얼마 전부터 COBIT5 에 대해 논문을 기획 중입니다.

IT 기획에 관심이 많습니다. 평소 기획에 관심이 많이 있으며 IT와 기획이 어떻게 접목되는지 공부하고 있습니다. 무에서 유를 만드는 기획은 저를 충분히 매료시킵니다.


저는 항상 책 속에서 답을 찾습니다.
매달 최소 5권의 서적을 읽고 블로그에 서평을 기록합니다. 책을 통해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사유하는 능력을 함양하고, 우리가 사는 세상을 거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길 원합니다.

IT, 경제, 철학, 인문, 역사 등 책의 주제를 가리지 않는 '잡식독서가'지만, 굳이 최고 관심 분야를 선택하라면 단연코 역사입니다. 'E.H 카'는 자신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 에서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 라고 정의했습니다. 그 때문에 역사를 모른채 현재를 살아가는 것은 지도 없이 광활한 사막을 건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러한 역사를 통해 인간사에 얽혀진 보편적인 법칙과 통찰력을 배우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배움의 기쁨은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아직은 독서모임에 참가하고 있지 않습니다. 참여하고는 싶지만, 저의 학습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꾹 참고 자제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책근육'을 키워서 하루빨리 독서토론의 세계에 발을 내디디고 싶습니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합니다.
"Reading makes a full man, a conference a ready man and writing an exact man."
읽기가 (지식 등이) 넉넉한 사람을 만들고, 대화가 (어느 상황에서든) 준비된 사람으로 만든다면, 글쓰기는 사람을 (매사에) 정확한 사람으로 만든다.
- 프랜시스 베이컨
영국의 프랜시스 베이컨은 다음과 같이 글쓰기의 중요성을 역설했습니다. 저 역시 글쓰기의 효과를 굳게 믿고 글쓰기 방법론 책을 읽으며, 서평을 쓰며, 논리문을 쓰면서 꾸준히 훈련하고 있습니다. 결국, 글 쓰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글을 쓰는 또 다른 이유는 '기록'하기 위함입니다. 기록되지 않은 것은 언젠가 사라집니다. 이런 당연한 것을 늦게나마 깨달은 이후 블로그에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와 삶 그리고 세계에 대해 기록합니다.

세계의 역사를 연구하고 그 안의 문화와 예술에 관해 연구하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정말이지 너무나 행복한 순간입니다. 역사와 문화를 통해 인간의 존재에 대해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노력합니다.

여러 분야의 IT에 대해 연구합니다. 회사의 업무와 직결되기도 하는 또는 그렇지 않은 내용을 조사하고 블로그에 기록합니다. 또한, 관심있는 분야에 대해 논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영어에 관심이 많습니다.
토종 한국인이 어떻게 영어를 공부해야 할지 오랫동안 고민했습니다. 토익 공부를 하기보다는 reading & speaking 위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겪은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를 블로그에 빠짐없이 공유하겠습니다. 참고로 지금은 전화영어를 매일 하고 있습니다.


행복한 일을 하고 싶습니다. 
문명의 발전과 함께 세계는 계속해서 좁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는 여전히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아직도 인류는 경제위기, 전쟁과 학살, 기아 등에게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라는 한 명의 개인이 인류를 위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저의 결론은 '우리는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입니다. 그저 먹고 살기 위함이 아닌 꿈을 좇으며 행복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러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우주 속의 '나'는 굉장히 보잘것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우주 전체를 통틀어 유일무이한 존재가 바로 '나'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저는 휴머니스트 혹은 인도주의자와 같은 거창한 호칭을 가질만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저 모두가 평화롭고 행복하게 한 번뿐인 인생을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물론 경쟁이 극도로 심화된 21세기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래도 제 신념을 계속 관철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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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세계2차대전 중 일본이 미국의 진주만을 공습함으로써 두 나라간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이를 태평양전쟁 이라고 부른다.) 영화는 일본이 잇따라 패배함으로써 궁지에 몰린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있다. 미국은 일본 본토를 점령하기 위해 이오지마 섬이라는 작은 섬을 공략하였다. 미국에게 이오지마는 일본 본토 공략을 위한 전략적 요충지였고 그 이유때문에 일본은 반드시 이 작은 섬을 사수해야만 했다.

미국은 작은 화산섬에 불과한 이오지마를 쉽게 함락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을 깨고 양 국가는 한달 정도의 치열한 공방전을 치르게 되었다. (1945년 2.19~3.26 )

이 영화 철저하게 일본인의 관점에서 표현되었다고 할 수 있다. 평소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군의 이미지와는 매우 다른게 표현된다. 전쟁을 앞두고 가정을 그리워하는 어린 청년의 모습을 보면 영락없이 연민을 느끼기 쉽다. 

그러나 이 영화는 현실 밖 어두운 이면은 전혀 다루지 않았다. 당시 이오지마 섬은 일본이 아닌 식민지였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식민지 주민을 총알받이로 삼고 잔인하게 학살했다는 사실은 전혀 다루지 않았다. 

전쟁은 강자에게나 약자에게나 너무도 참혹하다. 전쟁을 원하는 극소수의 지배자들 때문에 다수의 평범한 사람끼리 살육한다는 것이 꽤나 아이러니 하다. 극소수의 지배자들의 이익에 의해 많은 사람이 죽었다.

지금은 그런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야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과연 그럴까. 지금 분쟁이 발생하고 있는 나라들 역시 동일한 이유로 싸우고 있다. 더 이상 미국과 같은 강대국도 분쟁을 말릴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고 있다. 오래전 전쟁의 역사가 남의 일 같이 않은게 이 이유 때문이다.

인간은 언제쯤이야 합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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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 아포칼립토



영화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영화이다. 멕시코 마야문명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어떻게 찍었을까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너무나도 사실적인 묘사 덕분에 영화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 되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몇 가지 궁금증이 들었다.
그 당시 살아있는 사람의 심장을 태양신에게 바치는 행위가 정당화 될 수 있을까? 
그 당시 지배부족들은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살아 있는 사람의 심장을 꺼내죽이곤 했다. 그래서 주변 부족들의 불만이 나날이 커져만 간 것이 사실이다.

아즈텍 문명에서와 같이 사람을 죽이는 문화는 절대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인류 공동에게나 지배 부족에게나 득이 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강자는 약자를 포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지속적인 강자가 될 수 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지금 이 순간이 인류의 모든 역사 중에서 가장 평화로운 시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폭력적인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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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 브레이브 하트


이런 영화가 좋다. 사실을 기반으로 한 그리고 영웅을 기반으로 한 영화. 비록 허구적인 요소도 많이 들어있다고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이 영화는 13세기 영국과 스코틀랜드와의 전쟁에 기반한다. 당시 영국은 에드워드 1세라는 강력한 권력의 왕이 통치하고 있었다. 그는 섬 전체를 하나로 통일하고 싶어했다. 스코틀랜드와 영국의 전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윌리엄 월레스는 실제로는 '스털링 다리 전투'에서 크게 이긴 후 유명해졌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평원 전투로 표현했다고 한다.

마지막에 월레스가 처형당할때 '프리덤' 이라 외치던 모습이 인상깊다. 그가 절실히 갈구했던 '자유'를 우리는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반성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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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이슬람 학교2


책을 읽으며 놀라웠던 것은 지금껏 내가 세계를 이해할때 이슬람의 존재를 배제 해 왔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슬람에 대해 모르는 점이 너무나도 많았다. 이 책은 대화체로 쓰여있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다. 때문에 누구나 한번쯤은 일독해 보는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얼마나 우리가 서구중심의 역사관에 익숙해 져 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저자는 이슬람을 알아야 역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아직은 깊이가 없는 나도 대체로 공감한다. 

책에 서술된 이슬람의 역사 하나하나가 나의 기본 지식을 무너트렸다. 
이슬람 문명은 페르시아와 비잔틴 이라는 두 거대 제국을 무너트렸다 그리고 두 문명을 포용하여 찬란한 문화를 유지했다. 이슬람의 기본 정신이 포용과 융합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긴 어둠을 깨는 유럽의 르세상스는 이슬람에 의해 발전한 지적 토양 역할을 했던 스페인의 톨레도에서 시작되었다. 스페인 톨레도에서 전세계 최고 학자들이 이슬람이 축적한 모든 학문의 업적을 라틴어로 번역했다. 그리고 번역된 책들은 메디치가 의해서 피렌체와 로마에 유입되었고 이 경로를 따라 유럽 르네상스가 발현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서구와 이슬람과의 관계는 불편하다고 할 수 있다. 과거 이슬람은 천년동안 유럽을 지배했다. 책의 본문 내용은 이렇다
"메카에서 시작된 이슬람이 북아프리카를 정복하고 711년에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이베리아 반도에 들어갑갑니다. 732년에는 파리 교외 푸아티에까지 진출한 뒤 800년간 스페인과 포르투갈 지역이 이슬람의 땅이었습니다. 아울러 프랑스 남부도 약 200년, 이탈리아 남부는 약 220년 정도 이슬람의 지배를 받ㄴ습니다. 오랫동안 지중해는 이슬람의 바다였습니다. 1453년에는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면서 동부전선이 뚫리죠. 이여세를 모아 이슬람은 알바니아, 그리스 불가리아, 체코, 헝가리를 정복하고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심장인 빈까지 진출합니다. 이때가 1683년으로, 이슬람과 서구와의 관계에서 굉장히 중요한 해입니다. 이슬람이 가장 번성했던 극성기이기도 합니다. 
오스만 제국이 빈을 세 차례나 공격합니다만 빈이 결국 막아 내죠. 이슬람이 지브롤터를 건넌 711년부터 빈이 세 차례 공격당한 1683년까지 거의 천 년 가까이 유럽은 이슬람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침략당하고 지배당하는 등 전쟁과 위협의 공포에 떨었습니다."

이정도면 압도적인 우위인것 같다. 오스트리아 빈까지 세력이 확장되었다면 서유럽을 제외한 나머지 유럽이 모두 이슬람 지배하에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1683년 이후 100년의 냉전 동안 힘의 우위가 바뀌게 된다. 1798년 나폴레옹의 이집트 정벌을 계기로 이제 서구가 이슬람을 공격하여 정벌하게 된다. 이후 200년간 모든 이슬람 세계가 한 지역도 예외 없이 서구의 지배를 받았다. 대부분의 동아시아도 이 시기에 서구의 지배를 받게 된다.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고, 필리핀은 스페인의 지배를 받고, 인도는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북아프리카 대부분은 프랑스 지배를 받고, 중동은 영국가 프랑스가 분할 지배하게 되었다. 그동안 지배받았던 것에 대한 울분을 토하듯 혹독하게 탄압했다. 그러던 중 세계 1,2차 대전이 발생하게 되어 이슬람 문명이 분할되면서 오늘날의 중동의 모습이 된것이다. 

오늘날의 중동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세계 1차대전 당시 이슬람은 오스만 튀르크 제국이 종주국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스만 튀르크 제국은 독일, 오스트리아와 함께 패전국이 되고 그 결과 제국이 와해 되었다. 이게 중동 갈등의 원인이다. 1000년동안 이슬람의 영향을 받던 사람들이 갑자기 서구의 지배를 받으려니 여기저기서 갈등의 씨앗이 생긴 것이다. 세계의 경찰 역할을 자처하던 미국도 자신의 실리를 추구하여 명분없는 이라크전쟁을 일으키는 등 갈등의 일으키는 주요 나라 중 하나 이다. 

이번에는 알카에다의 실체와 발생 배경에 대해 알아보자. 1797년에 구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함으로 인해 미국은 이를 견제하기 위해 '사이클론 작전' 암호명으로 파키스탄, 사우디 등과 협력하여 무자헤딘(이슬람 전사)에게 재정을 후원하고, 무기를 제공하고 군사를 훈련시킵니다. 이러한 전폭전인 지지하에 알 카에다가 급성장하게 되고 그 책임자가 오사마 빈 라덴 이다. 사실 오사마 빈 라덴은 최고 재벌가 출신으로 미국에도 많은 후원을 하여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였다고 한다. 사이가 틀어진것은 1990년 걸프 전쟁 때이다. 1990년 8월 2일에 사담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공격하고 이에 미국을 중심으로한 연합군이 이라크를 공습한다. 사우디가 쿠웨이트에 군사원조를 지원하자 이라크는 이에 반발하여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을 압박했고 사우디는 미국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다. 조건은 미군의 사우디 주둔이었다.
이 소식을 듣고 오사마 빈 라덴은 신성한 이슬람 땅에 이교도인 미군을 주둔시킬 수 있는지 따졌으나 소용없었다. 결국 빈 라덴은 사우디를 배신자, 변절자 라고 비난하면서 관계가 틀어졌다. 당연히 미국과도 틀어지게 되었고 미국 군사 시설을 직접 공격하기 시작하면서 9.11 테러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처럼 이슬람 세계사에 아주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문명이다. 이를 반드시 알아야 세계의 사건사고를 이해할 수 있다. 

ps. 간혹가다가 북한과 전쟁이 절대 일어나지 않을거라고 하는 사람들을 보게된다. 무슨 근거로 그런이야기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세계2차대전이 불과 50년 전에 일어났고 지금도 끊임없이 팔레스타인, 시리아에서 내전이 발생하고 있고, IS무장단체에 의해 각종 테러가 발생하고 있는 요즘이다.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는 근거는 전혀없다는 것이다. 제대로 세계사를 이해하고 그런 주장을 했으면 좋겠다. 

추가적으로 정리가 필요한 역사적 사건
  • 러시아 황제 차르 알렉산드 2세 암살
  • 드레퓌스 대위 사건
  • 후세인-맥마흔 비밀조약
  • 밸푸어 선언과 사이크스-피코 조약
  •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 이스라엘 시온주의자 - 데이르 야신 마을 학살 사건
  • 1979년 구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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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지금 알고 있는 걸 서른에도 알았더라면



비하하는 것은 전혀 아니지만 사실 나는 이런류의 자기개발서를 잘 읽지 않는다. 지식을 습득할 수 있고 무언가를 깨우치게 하는 책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이 책을 도서관에서 찾아 읽은 것을 보니 꽤나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렇다. 나는 요즈음 정신적으로 힘들다. 미래에 대한 고민, 사회에 대한 고민, 가족에 대한 고민이 계속 나를 짓누른다. 그 중 가장 큰 고민은 역시 '나'의 미래이다. 내가 잘하고 있는게 맞는지,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고민을 하게된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고민을 해서 더 나아질게 없으면, 고민을 하지 말아라' 라는 의견이 나왔다.하지만 뒤이어 나의 미래를 위해서 고민이란것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의견이 나온다. 이런것을 사유라고 하는가. 아니면 잡념이라고 하는가. 혹은 불안이라고 하는가.

때마침 내가 즐겨듣는 팟캐스트 '지대넓얕'에서 알랭드 보통의 [불안]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들었다. 책에서 얘기하는 불안의 원인은 옛날과 달리 평등해진 사회에서의 차이(빈부격차)가 개인에게 더욱 큰 박탈감으로 적용된다는 것이다. 타인과의 비교로 인해 '불안함'이 생긴다고 이해하면 되려나.  

다시 본래 책으로 돌아가보자. '지금 알고 있는 걸 서른에도 알았다라면' 이라는 책은 어찌보면 진부한 책 제목이다. 누구나 중년이 되어 후회하면서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 서른을 곧 맞이할 29살이다. 나중에 나이가 들어 저런말을 하며 후회하고 싶지는 않다. 서른을 회상하면서 미소를 지으며 멋있게 살았지. 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 많은 고민을 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의 서른은 기록될 것이다. 사진을 올리며 글을 쓰고 그때그때의 감정을 쓸 것이다. 그리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일을 찾아 열심히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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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자본주의



'쉬지 않고 일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살기 힘든가'
꽤나 자극적인 물음이다. 책을 읽은 뒤의 나의 답변은 '우리가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기 때문에' 이다. 부끄럽게도 나는 자본주의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태어났고 자라왔기 때문에 모든 세계가 이런줄 알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나라들이 적용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역사가 250년이 채 안되었다는 것과 아직도 자본주의의 무서운 본질이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되었다.

자본주의의 정의를 검색하니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자본이 지배하는 경제체제' 라고 나온다. 그러나 정확한 정의가 되어있지 않다고도 말한다. 자본주의는 18세기 유럽에서의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전세계에 퍼지게 되었다. 자본주의가 지금까지의 모든 체제 중에서 가장 효율적이고 생산적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그것은 당장 50년의 대한민국과 지금의 대한민국을 비교해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모든면에서 풍족해지고 살기좋아졌다. 그러나 모두가 다 그런것은 아니다. 불평등과 빈부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자본주의는 지금까지 여러번의 위험에 직면했다. 대표적인 예가 1929년 세계 대공황과 2008년 미국 금융위기이다. 세계 대공황을 해결하기 위해 케인즈의 이론을 적용한 뉴딜정책을 적용하여 위기를 모면하였다. 이 시기는 수정자본주의라고 부른다. 또한 미국 금융위기는 하이에크의 이론을 적용하여 신자유주의 시대가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든 자본주의는 완벽한 체제가 아니다. 끊임없이 보완되고 수정되어야 하는 '불안전한' 체제이다. 위에서 언급한 빈부격차와 불평등이 하나의 불안전 요소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견줄 수 있을 만큼 빈부격차가 크다. 책에서는 복지자본주의를 하나의 해법으로 제시한다. 복지라함은 교육, 기술양성, 직업훈련, 정부 보험(사조직의 보험이 아닌) 등을 말한다.

사람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는 사람보다 돈이 먼저다. 돈이면 안될 것이 없다. 나 역시 도 자본주의에 영향을 받아 비 윤리적인 사고를 하게될 때 다소 자괴감을 느낀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어떻게 해야 잘 사는 것일까.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복잡한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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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글쓰기 능력이 매우 요구되는 요즈음이다.. 회사에서는 기획서, 제안서로, 학교에서는 논문, 리포트로, 개인 측면에서는 서평, 자기소개서를 쓸때 글을 잘쓰는 능력이 요구된다.

저자는 글을 두 갈래로 나눈다. 문학적인 글과 논리적인 글이다. 시, 소설, 문학은 문학적인 글이다. 에세이, 평론, 보고서, 칼럼, 판결문, 안내문, 사용설명서, 보도자료, 논리문은 논리글이다. 칼로 자르듯 할 수 없지만 대략 그렇게 나눌 수 있다고 본다. 문학글은 재능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러나 논리글은 그러지 않다. 누구나 꾸준한 노력과 훈련을 통해 '어느정도'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나에게는 매우 기쁜 소식이다. 저자 유시민은 이렇게 비유한다.  '누구나 안도현처럼 시를 쓸 수는 없지만, 누구나 유시민처럼 논리글을 쓸 수 있다'

저자는 운동권 대학생이었다. 공부보다는 독재정권에 대항하여 대모를 하고 선전 유인물을 제작하는 평범하지 않은 생활을 하였다. 그는 학교수업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대신 독서서클에 가입하여 책을 읽고 핵심 내용을 추려 발표하고 토론하는 생활을 했다. 저자는 이때부터 스스로는 인지하지 못했지만 '글쓰기 훈련'을 해왔다고 한다. 모임에서 발표하기 위해 맡은 부분을 정리하면서 논리적, 실증적 근거를 탐색하는 습관이 생겼다고 한다. 

책을 읽던 중 괜찮은 방법이 떠올랐다. 책을 읽으면서 핵심 문장, 단어를 메모해 두었다가 서평을 쓸때 메모한 단어를 연결하여 문장을 쓰는 것이다. 또한 책을 읽으면서 생긴 질문 역시 메모해 두면, 글을 쓸 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해볼 수 있을 것이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스킬들이 많이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한가지의 방법으로 귀결된다. 많이 쓰라는 것이다. 진부한 말이겠지만 어쩔 수없다. 많이 쓰다보면 누구나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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