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정리] 내가 책을 읽게된 계기

책이란 말만 들어도 약간의 설렘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굉장히 신선하고 재미있는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책과 이렇게 가까워진 시기는 오래되지 않았다. 오늘은 내가 책을 '제대로' 읽게 된 계기에 대해 정리하려고 한다.

나의 책벌레 시절?
나는 '어른'이 된 후 제대로 책을 제대로 읽지 않았다. 여느 젊은세대들과 같이 '아프니까 청춘이다' 등 처럼 유명한 책만 호기심으로 읽곤 했다. 그리고서는 마음속으로 좋은 책을 읽었다고 의기양양하곤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이가 없는 일이다. 이래뵈도 어릴때는 (초등학교 3학년 쯔음으로 기억된다.) 책을 한시도 손에 놓지 않던 책벌레 였다. 그러나 책보는 자세가 좋지 않았던지 어린나이에 시력이 급격이 안좋아지게 되었고, 부모님이 책을 못읽게 하는 선택을 하시면서 나의 책벌레 시절(?)은 막을 내렸다.그 후 부터 28 살때까지, 전공서적, 베스트셀러 이외의 책은 거의 보지 않는 평범한 여느 대한민국 사람으로 살았다.

우연한 기회로 책과 다시 조우하다
내가 책을 다시 읽게된 아주 중대한 사건이 발생했다. 여름을 맞아 5일 휴가를 쓰게 되었는데, 친구들과 일정이 맞지 않아서 황금같은 휴가를 혼자 보내게 되었다. 고민 하다가 시원한 도서관에서 실컷 책을 읽어보자 라는 결심을 했다. 5일 동안 책을 보며 알게된 것은 1) 책을 읽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는 것과 2) 도서관에 좋은 책들이 굉장히 많다는 것과, 3) 책읽는 것이 꽤 재미있다는 사실이었다. 남들처럼 놀고 즐기며 보낼 수 있었던 5일을 책을 읽는 시간으로 사용한 이후에 내 삶의 형태는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책을 읽어야 한다고 항상 얘기를 한다. 이것은 항상 강조되고 있어왔지만 그런 와중에도 나는 책을 많이 읽지 않았었다.

책이 나를 변화시키다
책은 나에게 정말 어떤 스승보다 위대한 존재이다. 채찍질이나 큰소리 한번 없이 나를 단숨에 모범생으로 만들었다. 이 글을 쓰는 나에게 찾아온 변화가 굉장히 낮설다. 책을 통해 내가 변화한 것은 크게 책중심의 삶, 아침형 인간, 시간관리 으로 분류된다. 사실 그 외에도 많은것 같지만 이번에는 생략하도록 하겠다.

1) 책 중심의 삶
나는 평소에 보고싶은 책이 생기면 목록에 기재해서 차곡차곡 쌓아놓는다. 하나하나 읽을 때마다 목록을 삭제하는데, 재미있는 점은 어찌된게 이 목록 줄지를 않는다. 하나의 책을 읽으면 그로 인해 보고 싶은 다른 책이 2~3권 이상 생기게 되어 목록이 계속 많아지는 것이다. (내가 워낙 욕심이 많은데다가 하나에 빠지면 남들보다 깊게 빠지는 성격이기도 하다.)

초기의 나의 책 관심사는 업무 스킬 향상에 있었다. 때문에 마케팅, 기획 등 평소 관심이 있던 분야의 책을 위주로 보았다. 평소 궁금했던 그리고 알고 싶었던 내용들이 책이 모두 있었고 그로인해 업무 스킬이 굉장히 향상되었다는 자신할 수 있다. (우리가 원하는 모든 지식들이 책에 모두 녹아져 있는데, 그동안 나는 왜  책을 읽지 않았을까? 부끄럽게도 이 대답에 나는 명쾌하게 대답할 수 없다. '그냥' 이라는 대답이 제일 정확할 것이다.)

요즈음에는 고전에 관심이 많아서 '명로진 권진영의 고전읽기'라는 팟캐스트 프로그램을 항상 듣고 있다. 아직 듣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꼭 한번 들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굉장히 재미있다. 지금까지 나는 고전에 대한 나의 견해는 그냥 예전 사람들이 쓴 글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었다. 책을 읽음으로써 바뀌었지만 고전은 모든 사람들에게 반드시 꼭 읽어야 하는 내용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또한 철학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많은 철학자가 있겠지만 그 중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공자, 그리고 니체가 있다. 각 철학자의 대표저서를 구매해서 책장에 보관중이지만 아직 책을 펼쳐보지는 못했다. 그 중 니체는 내가 제일 관심있어하는 매력적인 철학자이다. 책을 읽고 싶다라는 느낌이 이런것일까. 그들의 책을 읽어보고 싶고 그들이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알고싶은 생각이 가득하다.

2) 아침형 인간
위에서 처럼 보고싶은 책은 산더미인데 직장생활을 하는지라 시간이 항상 모자르다. 또 핑계를 대자면 자기개발을 목표로 자격증시험도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시간에 쫒기고 있다. 그럼에도 책을 조금이라도 보고싶은 마음에 '아침형' 인간이 되기로 했다. 아침형인간과 저녁형인간 각각이 서로의 장점을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긴 하다. 하지만 아침에 일찍 일어남으로서 얻게 되는 추가 시간은 나에게 정말 소중한, 나만의 시간이 되고 있다.

3) 시간관리
시간관리는 모든 현대인들의 주요 관심사 일 것이다. 시간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어진다. 차별이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시간의 활용 여부에 따라 삶의 산출물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러한 시간관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역시 책 중심의 삶을 살며,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부터 비롯되었다.

그저 책을 읽음으로서 생겨난 변화이다. 앞으로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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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보다 더 나은 삶을 갈구하기 위한 방법론

보다 더 나은 삶을 갈망하기 위한 방법론

국내든 해외든 더 나은 삶을 갈구하는 것은 다를게 없는듯 하다.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보통의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만한 "해외 유명 블로거의 글"을 정리하려 한다.

1.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
"나에게는 스스로가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몇몇 있다. 이들은 채무, 원치않는 직업, 원치않는 도시에 사는 것 등에 의해 힘들어한다. 나는 그들에게 그러면 당신이 추구하는 이상(ideal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들은 잠시 고민하더니 '열정을 가질 수 있는 직업', 자신을 위해주는 친구를 찾길 원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것들이 인생에서 충분한 가치가 있는것이라는 것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것 외에 아주 중요한 것이 빠져있다.

2. 이상(ideal)에 너무 얽매이지 말자
저자는 너무 이상(ideal) 적인 삶에 사로잡혀 있는것이 문제라고 한다. 즉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에 의해 자기 자신을 압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혹자는 이렇게 질문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상(ideal)을 가지지 말라는 것인가?' 저자는 단언하며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대신 이상을 가지되 현재의 삶에 너무 빡빡하게 적용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것이 현재의 인생을 불행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3. 그러면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가?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이상은 가지되 이를 현실에 느슨하게 적용하자는 것이다. 현재에 감사해하고 지금 우리 앞에 놓인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으로 자신의 관점을 돌리는 것이다. 그제서야 진정한 평온한 상태가 될 것이다. 핵심 여기에서 부터다. 평온한 상태에서 자신이 열망(aspiration)하고 있는 어떤 것을 향해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단지 현재 삶이 만족스럽지 않은 이유 때문이아니라, 자신을 정확히 인지한 상태에서 어떤 욕구(desire)가 생겨난 이유로 다른 직업을 찾을때야 비로소 흔히 말하는 '열정적인' 직업을 갖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요약
이를 요약 해보면 아래와 같다. 이는 연습이 계속 필요하며 저자도 역시 계속 연습하고 있다고 한다.

1. Notice your dissatisfaction.
2. Notice your ideals that you’re holding tightly to.
3. Loosen your hold on these ideals, and turn to the present moment.
4. Really see the present moment with curiosity, find something to appreciate.
5. Accept the present moment completely, with love.
6. From this place of peace, respond, take action. It might be toward an aspiration, or not, but it’s a response from a good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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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글쓰기가 사람을 똑똑하게 만드는 이유

올해 블로그를 시작해서 조금씩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첨차 글쓰는 재미가 무엇인지 깨닫고 있다. 단순 재미뿐만 아니라 글쓰기는 분명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아직 많이 쓰지 않았고 많이 읽지 않았지만, 많이 쓰고 읽을 수록 더욱 더 확신을 가지게 되고 있다.

어느날 '글을 쓰면 똑똑해 진다' 라는 흥미로운 제목의 기사를 발견했다.
원문 <How writing makes People smarter>

글쓰기가 사람을 똑똑하게 만드는 이유

모든 사람은 글을 써야 한다. 단연코 이는 전문 작가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글쓰기는 우리를 똑똑하게 만든다. 비판적 사고를 키우고, 창의성을 높히고, 생각을 명료하게 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글쓰기 만한 것이 없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보자.

1. 글쓰기는 머릿속에 엉켜 있는 실타래를 풀어주어, 보다 명확한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준다.

이것은 글쓰기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환상적인 장점일 것이다. 글쓰기를 통해 우리는 현재를 비춰보고, 그것을 소화하고, 깊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의 주머니(a pocket of time)' 를 제공한다.

나는 전적으로 내가 생각하는것, 내가 지향하는 것, 내가 보고 의도한 것을 발견하기 위해 쓴다", 
"Play It as It Lays" 의 저자 Joan Didion

"나는 나 자신에게 나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 글을 쓴다. 재난을 처리하고, 균형잡힌 인생을 위해 인생의 혼란을 정리하기 위한 수단이다."
"Tales of the City" 의 저자 Armistead Maupin

글쓰기는 생각을 제대로 운영하기 위한 방법이다. 이를 통해 우리를 비춰 볼 수 있게 되고, 새로운 통찰 및 시각을 얻을 수 있다.

2. 글쓰기는 보다 많은 정보를 습득하여 많이 배울 수 있도록 한다. 

글을 씀으로서, 자신이 지향하는 것을 명확하게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주어진 정보에 대하여 보다 많은 정보를 습득하게 됨으로서 양질의 학습이 가능하게 된다. 컨퍼런스나 미팅에서 노트기록을 하는 참석자들이 들이 그렇지 않는 사람들에 비해 많이 학습하는 것 역시 이와 같은 이유에서 비롯된 결과이다.

흥미롭게도 princeton University 에서 수행된 <연구>에 따르면, 종이에 노트 필기하는 학생들이 노트북에 필기하는 또래들에 비해서 양질의 학습을 성취할 수 있다고 한다. 랩탑 사용자들은 자신이 무엇을 쓰는지에 대한 생각을 골똘히 하지 않은채 그저 들리는 그대로 타이핑하게 된다. 그저 말하는 것을 종이에 옮겨 적는것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손으로 필기하는 사람들은, 특정때문에 강연자가 말하는 것을 모두 적어낼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의도하지 않더라도 강의에 더욱 집중하고 핵심 사항을 요약하려 노력하게 된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더 많이 배우게 배운다는 것이다. 과학적으로 인간의 뇌의 '이해 프로세스'는 손으로 무언가를 쓸때 완전하게 작동한다.

오늘날 우리는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다. 아마 몇몇은 랩탑으로 타이핑 하지 않는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는 펜과 종이를 사용하는 '구식의 쓰기방식' 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3. 쓰는 것은 부정적인 생각을 처리할 수 하게 하여 정서지능(emotional intelligence)를 향상 시켜준다.

Stefanie Spera 외 2명이 취업을 준비하는 63명의 엔지니어를 대상으로 '글쓰기가 스트레스 단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를 수행하였다.

엔지니어는 다음과 같이 세개 그룹으로 분류되었다.

  • 글쓰기 통제 그룹 (writing control group) : 하루 계획에 대해 글을 쓰고, 취업과 관련한 활동에 대해 글을 쓴다)
  • 통제 그룹 (control group) : 아무것도 쓰지 않는다.
  • 실험 그룹 (experimental group) : "expressive writing" 을 수행한다. 이는 깊은 생각, 고통스런 경험에 대해 저널을 기록한다. 실험 그룹의 엔지니어는 취업활동에서 오는 상실감, 거절, 재정 스트레스 등에 관해, 매일 20분의 시간을 할애해서 글을 썼다.


3달 후 실험 그룹의 5명은 취직을 했고, 글쓰기 통제 그룹은 취직을 못했고, 통제 그룹은 2명이 취업을 했다. 8달 후 글쓰기 통제 그룹의 24퍼센트만이 풀타임잡 직업을 얻었고, 통제그룹은 14퍼센터가 employment 를 하게 되었고, 실험그룹의 53퍼센트가 full time employment 로 일하게 되었다. 이 연구를 통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직업이 없다는 것에 대한 생각과 감정에 대해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부정적인 생각을 완화할 수 있게 되며, 이를 통해 새로운 시각 및 통창을 얻게 될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의 통제를 강제로 수행하는 것은 스스로 큰 부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글을 쓰는 행위로 인해 치유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리
심리학적으로 글쓰기의 효과는 (특히 펜과 종이를 사용하는 경우,) 운동의 점진적 효과와 유사하다. 지금 당장 이에 대한 효과가 나타나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변화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글을 쓸때 비로소 우리의 생각은 단단해진다. 자신의 감정을 관찰하게 되고, 스스로 질문을 하게 된다. 우리가 창의력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러한 단계를 통해 형성된다. 글을 쓰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똑똑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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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곁에 두고 읽는 니체


프리드리히 니체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니체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최근 나는 이러한 니체라는 인물에 흥미가 생기게 되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고 싶었다. 내가 아는 니체 수준의 니체는 어떤 철학자보다도 파격적이고 매력적이지만 마음은 따듯한 사람이었다. (어딘가 차가워 보이는 외모에서 슬픈 감정이 느껴지는것 역시 이와 같은 이유일지도 모른다.)

솔직히 이 책을 다 읽은 지금도 내가 니체에 대해서 정확히 안다고 말할 수 없다. 다만 이 책은 니체의 여러 저서를 진지하게 읽어봐야 겠다는 다짐을 하게 한 고마운 책이다. 가장 보고 싶은것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라는 책이다. 이 책 뿐만 아니라 다른 철학 관련 저서에서도 자주 언급되었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는 니체의 대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유명하다. (물론 니체의 책은 대부분 굉장히 유명하다.)

책을 읽다보면 정확히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시선이 고정되는 문장이 있기 마련이다. 그때 해당 문장을 천천히 필사하고 암송했을때 진정한 독서가 된다고 들었다. 나는 솔직히 그 정도 수준까지는 되지 않는 것 같다. 대신 언제라도 니체의 말을 볼 수 있도록 아래와 같이 기록해 보았다.

1.
현재보다 퇴보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성장하고 발전하려면 지금보다 더 나은 나를 만드는 것이 모든 이의 꿈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자기 자신에게 확실한 임무를 부여하고 뜨거운 열정으로 가슴속 욕망을 일깨우며, 그로 인해 항상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영국 정신분석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앤서니스토 박사는 <고독의 위로(Solitude)> 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인간관계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두고 있지만 사실 인간관계와 행복의 연결고리는 매우 허약하다.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맺는다면 삶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이고, 행복하지 못하다면 그 인간관계가 분명 뭔가 잘못된 것이라는 우리의 생각은 지나친 게 아닐까?

만약 니체가 자신이 죽은 지 20년 뒤 태어난 이 심리학자의 말을 들었더라면, 정말로 옳은 말이라고 동감했을 것이다. 니체는 인간관계에 무척이나 서툰 사람이었다. 마음을 나눌 친구마저 별로 없었다. 그렇게 평생을 고독하게 살았지만 진짜 행복은 자기 속에 있다는 확고한 신념으로 평생을 일관했기에 견딜 수 있었을 것이다.

2.
사람들은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 누군가를 간절히 원한다. 자기를 상대해 줄 친구를 찾고, 막연한 안도감을 느끼기 위해 누군가에게 의지한다. 고독하기 때문이다. 왜 고독할까? 자신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순간적인 기쁨을 나누는 친구가 아무리 많아도 고독으로 인한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무엇인가에 온 힘을 쏟아야 한다. 자신의 다리로 높은 곳을 향해 걸으면 고통이 따르지만, 그것은 마음의 근육을 튼튼하게 만드는 고통이다.

3.
인생의 목적은 끊임없는 전진이다. 먼 곳으로 항해하는 배가 풍파 없이 조용히 갈 수만은 없다. 풍파는 늘 전진하는 사람의 벗이다.

4.
삶 자체가 곧 역사다. 지금 무엇을 위해 살고 어떻게 행동하는가. 그것이 바로 매일의 역사를 만든다. 두려워하거나 허둥대지 않고 오늘 하루를 마쳤는가, 게으르게 보냈는가, 용감하게 도전했는가, 어떤 일을 어제보다 더 나은 방법으로 행했는가. 이 같은 태도들이 하나하나 쌓여 매일의 역사를 만드는 것이다.

5.
그는 누가 어떤 책을 읽고, 외우는 것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니 그냥 알고 넘어가겠다는 식으로 나오면 크게 화를 냈다. 나는 책을 소리내어 읽을 것을 주장하는 사람으로서 니체의 생각에 안심이 된다.
"굳이 암송할 때까지 읽고 또 읽을 필요가 있을까요? 그렇게 하지 않아도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차이가 없지 않나요?"
자칫하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차이는 실로 대단하다. 진정한 가르침은 자신의 내면에 깊이 확실하게 넣어두는 보물과 같은 것으로 생각할 때 더 빛난다. 진정한 보물은 자유자재로 꺼내 쓸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러면 반복해서 외우고 또 외워서 확실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 정도가 아니라면 정말로 알았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리내어 읽고 기억하는 과정을 거칠 때 비로소 칼끝처럼 날카로워진 지식이 나의 재산으로 축적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것은 단지 언젠가 한번 읽은 것일 뿐, 영원히 나의 피와 살이 되지 않는다.

6.
외우는 것이 진짜 독서다.
"나는 단지 피를 쏟아서 쓴 것만 사랑한다."
니체는 전통적인 서구 종교와 도덕 철학에 깔려 있는 근본 동기를 밝히기 위해 그렇게 피를 쏟아서 쓰고 또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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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정리] 편협한 사고를 갖지 않기 위한 나의 노력

편협한 사고를 갖고 있는 사람은, 평생 편협한 인생을 살 것이다.

조금 극단적일 수 있는 예를 들어보자.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책의 주인공 '아이히만'은 세계2차대전 이후 A급 나치 전범으로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사형대에 선 그는 놀랄만큼 평범한 모습의 남성이었다. 600만병이 넘는 유대인을 학살했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야위었고 가족을 사랑하는 가장에 불과해 보였다. 다만 그가 보통 사람들과 다른점은 오직 한가지였다. 그는 제대로 생각하지 않았다. 스스로 생각할 줄 모르고, 상관이 시키는 것만 잘 처리하는 우등생 직원이었다는 것이다.

만일 그가 스스로에게 왜? 라는 질문만 던졌어도, 600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전범이 되어 수용소에서 사형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무서운 사실은 우리 모두가 아이히만일 수가 있다는 것이다. 기하급수적으로 생기는 정보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수동적으로 수용하기만 한다면 아이히만과 같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나는 다음과 같은 노력을 하고 있다.

1. 블로그에 글쓰기

글쓰기 행위는 나 자신과 대화하는 것과 같다. 나의 블로그에 [#생각정리] 라는 태그에서는 나의 생각을 정리하여 블로깅 하고 있다. 나는 1) 머릿속 생각들이 정리되지 않아 나를 괴롭힐 때, 2) 정리는 되었지만 글로 기록하여 오랜시간 되새기고 싶을때 글을 작성한다. 특정한 양식은 없으며 수필, 에세이, 시 등과 같이 다양한 형태로 기록되곤 한다. '글을 쓰는 것'은 '책을 읽는 것' 만큼이나 지속적으로 수행되어야 하며, 숙련이 필요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나의 이야기' 를 하나씩 읽어 봤을때 얼마나 설레고 행복할지 감히 짐작되지 않는다.

2. 해외 사이트의 글을 읽기

같은 주제라도 국내에서 바라보는 식견과 해외에서 바라보는 식견 및 안목이 차이가 날 수 있다. 나는 맘에드는 해외블로그를 선정하여 실시간으로 기사를 보고, 간혹 좋은 기사가 있으면 번역하여 내 블로그에 올리곤 한다. 어줍지 않은 연예인 기사를 볼 시간에 평소 관심있는 경제, 시사, 정치, 자기개발 등 다양한 분야의 글을 영어로 읽으면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이 넓어짐을 느낄 수 있을것이다.

물론 영어이기 때문에 한글 기사만큼 금방 내용이 이해되지 않는다. 그래도 좋은 내용이라면 오기로 붙어서 읽어보자. 사실 나는 영어자료를 읽기 위해 영어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예전 포스팅 [나는 왜 영어공부를 하는가?] 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런데 나는 자괴감을 느꼈다. 관심있는 주제에 대한 해외 연구자료를 검색하다가, 굉장히 좋은 사이트 발견하였음에도 해석이 되지 않아 읽기를 포기했던 적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몰라도, 나는 이와 같은 문제에 직면할때 굉장히 자존심이 생했고, 이를 통해 영어를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곤했었다."


3. 인문학에 빠지다

인문학의 중요성은 독서 후기 [비즈니스 인문학], [리딩으로 리드하라], [생각의 힘을 키우는 고전 공부법] 에서 자세하게 기록하였다.

인문학의 본질은 '생각하는 것'이고 인문고전 읽기와 인문학 강의 듣기는 '생각을 잘하기 위함' 이다. 또한 바보를 천재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인문학이다. 이를 읽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을까.


4. 블로그 읽기

나는 < ㅍㅍㅅㅅ , http://ppss.kr/ >  사이트에 블로깅된 글들을 종종 읽는다. 이 사이트는 한사람이 쓴 글이 아니고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의 글을 사이트에 포스팅하는 형태이다.

얼마전에 본 글은 아래와 같다. [심플함이란 어떤 상태인가?]  란 타이틀의 기사인데,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심플함' 이 어떤 상태인지 본질을 분석한 기사이다. 이와 같이 식견을 향상시킬 수 있는 포스트도 있고, [기획서용으로는 어떤 프로그램을 써야할까?] 와 같이 업무스킬을 향상 시킬 수 있는 포스트도 있다.


5. 사색하는 시간 갖기

빌게이츠는 '생각주간' 이라는 시간을 만들어서 아무도 만나지 않고 오랜기간 생각을 하는것으로 유명하다. 사색의 중요성은 [사색이 자본이다] 라는 책에서 자세히 말해주고 있다. (매우 좋은 책 이므로 꼭 한번 일독을 권한다.)

<아침에 출근하며 찍은 전경이다. 평화롭지 않는가>

내가 회사 근처로 이사를 가면서 가장 만족스러운 부분은 걸어서 출근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15분정도의 적당한 시간이 소요되므로 운동도 하고 생각도 할 수 있는 정말 귀중한 시간이 주어진다.

마음속에 근심이 많거나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을때,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밖으로 나와 이 길을 천천히 걷곤한다. 그러면 마음이 고요해지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어릴때는 아무리 멋진 풍경을 보아도, 경치가 아름답다, 멋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나였지만, 지금은 이런 자연경관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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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정리]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리고 어떻게 그것을 이룰 것인가.

나는 지금 이 순간까지 많은 방황이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방황할 것이다. 이것은 추측이 아니라 확신이다. 따라서 나는 앞으로 있을 방황, 파도에 덜 휘청거리기 위해 나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 볼 수 있도록, 내 삶의 목적과 그 이유를 명시해본다.

Question 1. 당신의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Answer. 나는 행복하기 위해 산다.
예전에는 대학에 간다, 취직을 한다. 전세집을 구한다. 등의 목적으로 살아갔다면, 지금은 이와 같이 물질을 목적으로 두지않고 내 마음속의 행복을 위해 산다. 행복이 내가 사는 이유이다.

이때 '아리스토텔레스 행복론' 을 빠트릴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세상 모든 것에는 목적이 있는데(목적론), 그 목적이 바로 행복이다라고 주장하였다. 다만 보통 사람들이 "배불러서 행복하다", "많이 잘 수 있어서 행복하다", "재밌게 놀아서 행복하다" 등 과 같은 것은 아리스토텔레스 입장에서는 한낱 향락이나 쾌락에 가깝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한 행복은 이성적 사유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성에 의한 관조를 통해서 행복에 이룰 수 있습니다. 이성에 의한 관조를 통해서 행복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관조는 여유가 있어야 가능하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은 여가 안에 있는 것 같다' 고 말했습니다. 여가 속에서 자기 자신과 세상 만물을 관조할 때 궁극적 행복에 이를 수 있습니다."
< 블로그 참고 - http://blog.naver.com/mydada88/220298809656>

사실 위의 내용이 완벽하게 이해가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 저서를 더 자세히 읽어봐야겠다.


Questions 2. 그렇다면 무엇을 하며 마음속의 행복을 추구하는가?

Answer. 나는 "앎"을 통해 얻는 "앎의 행복"을 추구할 것이다.
위의 답변은 어느 철학자의 말씀도 섞이지 않은, 100% 나의 생각이다. 나무아래를 걸으며 사색하다가 문득 떠오른것이다. 나는 지식을 쌓는것을 행복으로 삼고 또 이를 목표로하고 다른 사람들과 그 지식을 공유하는 것에 행복을 느낄 것이다.

당신의 삶의 목적과 그 어떻게 목적을 왜 추구하는지추구하는지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얇게 나마 나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지고 나를 객관화하여 바라보았다는 것에 대해 의의를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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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혼자 있는 시간의 힘



이 글을 쓰면서 안 사실이지만, 지금 이 순간 이 책의 저자인 '사이토 다카시' 의 책을 두권이나 읽고 있었다. ('곁에 두고 읽는 니체' 와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을 모두 읽고 있다.) '곁에 두고 읽는 니체'는 아직 다 읽지 않았지만, 현재 두 책 모두 베스트셀러급 되어 아주 유명하다.

저자 사이토 다카시는 젊은 시절 깊은 고독을 겪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나고보니 힘든 고독의 시간 즉 '혼자 있는 시간' 이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거름이 되었다고 한다. 나는 아직 젊지만 저자의 의견에 대해 어렴풋이 공감이 된다. 나도 인생의 황금기인 20살 초반과 중반까지 고독의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 저자와 마찬가지로 나도 타지에서 대학생활을 하였다. 낮선곳에서 독립하여 살며 재미있던 적도 있었지만, 고독 역시 공존하던 시절이었다. 나의 고독은 첫사랑에 떠나보내며 군대에 입대하면서  절정으로 치닫게 되었다. 2년이라는 군대 기간동안, 내가 살아오며 한 생각 이상으로 생각하고, 고민하고 성찰 했던 것 같다. 야간근무시 바라보았던 밤하늘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으며, 특별한 기억으로 자리잡았다. 
군대에 전역하고 나서도 다를게 없었다. 하릴없이 집에 있을 순 없어서 도서관을 다녔었는데.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그 길이 그렇게 외로울 수 없었다. 가로등만이 나를 위로해주는 것 같았다."

힘들었지만 소중했던 이런 경험들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는게 아닐까. 지금의 나를 움직이게하고 격려하고 있는 원동력이 바로 고독했던 그때 그 추억이라고 나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친구와 함께 안락한 날만 보낸 사람은 갑자기 혼자가 되었을때 외로움을 감당하지 못한다. 애초에 뭘 해야 할지를 모르니 그저 단골 술집에 들러 좋아하는 술이나 안주가 나오면 기뻐하는, 발전 없는 즐거움이 인생의 목적이 돼버린다. 단골 술집에서 낯익은 사람들과 잡담을 나누다가 돌아와 잠자리에 드는 인생이라면 고독하지는 않을지는 몰라도 후회 없이 살았다는 생각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요즘 20대에게는 애초에 적극적으로 혼자 있는 시간을 갖는 생각 자체가 없는것 같다. 하지만 청년기 특히 10대, 20대에 생각의 힘을 키우지 않으면 인생은 보잘것없이 끝나버린다."

"사람은 일단 쓰면서 자연스럽게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그 과정을 끝내고 타인을 대하면 훨씬 내실 있게 이야기 할 수 있다. 자기의 생각을 정리하고 토론에 들어왔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는 크게 다르다.
쓰는 작업은 내면을 파고드는 드릴이 된다. 내관의 대체법이 되어주는 것이다."

"요즘 학생들은 친구나 연애에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대부분의 시간을 이 두 가지에 할애하고 나머지는 일이나 학업같은, 의무적인 일을 하는 데 사용한다. 그래서 오롯이 자신을 위해 쓰는 시간이 매우 적다. 잠들기 직전까지 매일이나 휴대전화로 누군가와 끊임없이 연락하면서 혼자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샘에 물을 비축할 수도, 샘에서 물을 퍼 올릴 수도 없다."

요즘 기성세대들은 혼자가 되는 것을 유난히 기피하는것 같다. 외로움을 많이 느껴서 일까. 혼자인 모습을 다른사람이 보면 이상하게 볼까봐 두려운 것일까. 그래서 일까, 혼자 있는 시간을 휴식시간이라고 생각하는 기성세대들은 많지 않은것 같다. 대신 친구들과 만나서 저녁을 먹고 커피를 먹으며, 의미없는 대화를 하는 것이 휴식, 힐링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대부분의 20대들은 대부분은 '혼자 있는 시간' 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그나마 혼자 있는 시간도 페이스북, 카카오톡, 인스타그램등과 같은 SNS 를 하며 시간을 모두 허비한다.

나는 다른 기성세대와는 다르게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또한 인맥관리를 강조하는 요즘 시대의 트렌드에 무딘 경향이 있다. 이것 뿐이랴, 요즘 다 한다는 페이스북, 트위터, 등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솔직히 왜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이 책 덕분에 내가 틀린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어서 기분이 아주 좋다

김정운 교수님은 에디톨로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교수님도 고독의 중요성을 알고 계신가보다.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은 아주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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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리딩으로 리드하라



몇일 전 교보문고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이 책이 인기코너에 비치되어 있는것을 볼 수 있었다. 출간된지 꽤 오래 되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 여전히 높은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비결(?)이 무엇일지 궁금증을 가져왔다. 

나는 이지성 작가를 [독서천재 홍대리] 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그 후 그의 다른 저서 [생각하는 인문학] 을 읽고, 큰 자극을 받아 인문학 독서를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식견이 부족해서 그런지, '생각하는 인문학' 책과, '리딩으로 리드하라' 의 내용이 크게 차이가 없는 것 같이 보이긴 했다.)

'생각하는 인문학' 에서 마찬가지로 '리딩으로 리드하라' 에서도 저자는 끊임없이 인문학 즉 고전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책을 읽다보면 저자의 화려한 문체에 취해 누구나 '고전을 읽고 싶다' 라고 느껴질 것이다. 

책에서 많은 석학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지만, 나는 율곡 이이에 대해 정리를 해보려 한다. 부끄럽지만 나는 율곡이이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단지 신사임당의 아들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율곡이이는 어릴적부터 공부에 두각을 나타났으며, 율곡 이이는 과거시험에서 9번 장원급제를 할 정도로 뛰어난 천재였다고 한다. - 이를 구도장원이라 한다.(처음에는 자그마치 13살이라는 어린나이에 장원으로 합격하였다.) 그러한 율곡 이이 조차 '자경문' 이라는 자기자신과의 약속을 수립하여 그것을 지키려 평생을 노력하였다. (참고로 벤자민 프랭클린 역시 자신이 지켜야 할 13가지 덕목을 수립하여 준수하였다)

자경문, 율곡이이
  • 마음이란 살아 있는 것이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는 정신을 한때 모으고 담당하게 그 어지러움을 살핀다. 그렇게 마음공부를 계속 하다보면 마음이 고요하게 안정되는 순간이 반드시 올 것이다.
  • 앉아서 글만 읽는 것은 쓸데없다. 독서는 일을 잘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일이 없으면 그만이겠지만, 일이 있을 땐 옳고 그름을 분간해서 합당하게 처리한 뒤 글을 읽는다.
  • 공부는 죽은뒤에야 끝나는 것이니 서두르지도 늦추지도 않는다.
"율곡의 삶은 '자경문'을 삶의 지침으로 삼기 전과 후로 나뉘는 듯하다. '자경문' 이전의 율곡은 그저 천재였을 뿐이다. 그러나 '자경문' 이후의 율곡은 성인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었다."

마음이 살아있다는게 무슨 의미일까. 살아 있는 모든것은 길들일수 있기 마련으므로, 지속적인 마음공부를 통해 마음을 고요하고 안정되게 만들으라는 말씀이 아닐까 싶다.

최근 나는 일과 독서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수립하지 않아 여러가지 곤혹을 치루고 있다. 독서에 큰 재미를 얻고 있는 지금, 다른 여타 자기개발 ( 자격증, 영어 ) 을 어떠한 비중으로 수행해야 하는지 심각한 고민을 해왔었다. 율곡 이이는 위와 같이 말씀하시며 나의 고민을 해결해 주셨다. "독서는 일을 잘하기 위해 하는 것인데, 일을 원활히 처리하지 않고, 독서에 무리하여 집중하여 어떤 문제가 발생한다면, 이는 차라리 안 읽은것 보다 못한것이라" 

공부는 평생하는 것이다. 열심히 취업을 준비하던 대학생때에는 '취업만 하면 더이상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될것' 이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곤 했었다. 물론 지금은 이러한 생각이 틀렸다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오히려 율곡이이의 말씀처럼 공부는 평생 해야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간혹, 독서 및 자기개발에 대한 욕심때문에 소중한 사람과의 만남을 소홀히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역시 율곡이이의 말씀처럼 평생 공부할 것이니 너무 서두르지는 않도록 해야 겠다.

아래는 내가 좋아하는 공자님 말씀이다. 책에서 이 내용이 언급되어서 적어본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고, 생각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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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자신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 - 최진석




요즘 인문학 강의가 유행되고 있다. 아니 오래전부터 꾸준히 거론되어 왔다. 나는 인문학은 물론 인문학 강의에도 관심이 전혀 없던 '보통 사람' 이었다. 단지 나에게 닥친 일차원적인 일(Task)를 처리하는데 급급했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아무리 많은 유명인이 혹은 주위에서 책을 읽으라고 해도 들은 체도 하지 않던 나였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고 지금도 바뀌고 있다. 내가 책을 읽게된 계기에 대해서는 기회가 되면 포스팅하도록 하겠다.

아무튼 다양한 책을 많이 읽게 되면서 '인문학 강의' 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최진석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기가 자기 삶에 주인으로 살고 있는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이다. 자기를 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정말이지 인생에서 이루어야할 가장 중요한 배움이 아닐까 싶다.

감명깊었던 내용,

"기준을 외부에 두고 있는 사람은 자기가 기준의 생산자가 되는데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반면 자신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기준의 수행자가 아니라 기준의 생산자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기준은 항상 외부에서 우리를 지배하는 것이고 외부에서 우리를 지배할때는 보편성과 객관성으로 무장하여 우리를 고립시킨다. 나는 어느쪽일까. 

기준을 외부에 두고 있다면 왜 나는 기준을 외부에 두게 되는 걸까. 내가 하는 것이 어떠한 기준에 미달되서 라고 대답할 경우 그 기준은 누가 만드는 것인가.

기준을 외부에 두는 사람은 조심스럽고 두려워할 수 밖에 없다. 이와 같은 사람들의 일상의 공간은 이삿짐처럼 보인다. 아무리 훌륭한 살림살이도 이삿짐 골목길 ( 누구나 다니는 골목길 )에 놓이면 초라하게 보인다. 즉 겉으로 보기엔 좋아보여도 내면 자체는 굉장히 초라하다는 뜻이다."




질문하는 사람의 표정을 유심히 본다. "제가 잘 몰라서 그런데.."

자기가 한번도 기준의 생산자, 창조자가 되지 못하고 , 외부의 기준을 자기 기준으로 삼아서 사는데 습관이 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기준의 처음은 있다. 그 기준은 엉뚱한 질문에서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기준을 외부에 두고 있는 사람은 자기가 기준의 생산자가 되는데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반면 자신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기준의 수행자가 아니라 기준의 생산자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기준은 항상 외부에서 우리를 지배하는 것이고 외부에서 우리를 지배할때는 보편성과 객관성으로 무장하여 우리를 고립시킨다. 나는 어느쪽일까. 기준을 외부에 두고 있다면 왜 나는 기준을 외부에 두게 되는 걸까. 내가 하는 것이 어떠한 기준에 미달되서 라고 대답할 경우 그 기준은 누가 만드는 것인가.

기준을 외부에 두는 사람은 조심스럽고 두려워할 수 밖에 없다. 이와 같은 사람들의 일상의 공간은 이삿짐처럼 보인다. 아무리 훌륭한 살림살이도 이삿짐 골목길 ( 누구나 다니는 골목길 )에 놓이면 초라하게 보인다. 즉 겉으로 보기엔 좋아보여도 내면 자체는 굉장히 초라하다는 뜻이다.

자신의 주인으로 삼으며, '완결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자기가 자기 주인으로 사는 것에 깊은 관심을 가진 철학자는 서양에서는 니체, 동양에서는 장자가 될 수 있다.

장자의 천도편에 유명한 윤편사이의 이야기가 있다.

윤편 : 책에는 무엇이 쓰여져 있습니까?
환공 제나라 왕 : 성인의 말씀이 써져있다

윤편 : 그 성인들은 살아 있습니까?
왕 : 아니지 죽었지.

윤편 : 그렇다면 왕께서 읽고 있는 그 책은 성인들이 남긴 찌꺼기일 뿐입니다. * 술찌꺼기 - 조백
왕 :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저는 수레바퀴 깎는 일만 평생 해왔습니다.
이러한 비법은 말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오로지 손의 감각입니다. 심지어 제 아들에게도 수레바퀴 깎는 기술을 전수할 수 없어서 지금까지 이렇게 제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윤편의 가르침은 "성인의 말은 생산된 그 순간까지만 진리였고, 그 순간이 지나가고 나면 그 가르침은 찌꺼기 일 뿐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혁신을 강조하는 회사.

혁신을 위해 많은 전문가를 초빙

1년~2년하고 있다 , 3년째가보면 혁신이 되어있지 않다

혁신에 대해 토론하고, 이론에 참여한것을 내가 혁신한것으로 착각하게 만들수 있다.

성인의 글을 읽으면서 내가 성인이 될것같이 착각할 수 있다.

성인의 기준을 따르는 것으로 자신을 성인과 동일시 하는 착각할 수 있다.

성인의 말은 성인이 한 사건의 결과물이다.

혁신을 이야기하는 목적은, 혁신을 하는것, 혁신을 담당하는 주인이 되는 것이다.

왜 이것을 알면서 아는 것으로 끝이나는가?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상입니까, 일상입니까

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일상입니까.

일상의 세계에는 '내'가 있습니다.

보편적 이념을 수행하는 데는 적극적이고, 목숨도 걸지만, 내가 직접살고 있는 일상을 관리하는 데는 소홀한가
왜 '우리'로 하는 데는 열심인데, '나'사는데는 소홀한가



이것은 사건을 담당할 주체로서의 이론이 없는것이 아니라
사건을 담당할 주체로서의 힘이 없는 것이다.

자기 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보편적 이념에 해박하고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만의 고유한 활동성을 가지는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이 고유한 나만의 힘 나만의 욕망, 이것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는가. 그것을 사건을 발동시킬수 있는가 없는가. 이것이 자기가 자기 주인으로 사는지 못하는지를 결정할 수 있다.

** "장자 이야기" 읽어보기

제사의 제물로 올라갈 소를 못했습니까?

제물이 될 소를 몇년 동안 잘 먹이고 살 찌운다. "내가 대단하구나" 라고 생각한다.

어느날 사람들이 깨끝이 씻기고, 비단옷을 입히고, 간다.
태묘에 가까워지자 눈치챈 소
"아 이제 나는 희생되는구나"

"내가 소로 태어나지 말걸
차라리 보잘 것 없는 돼지로 태어날걸"

뒤듲게 한탄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돌아가시오, 차라리 더러운 진흙탕 속에서 스스로 즐기는 삶을 택하지,
천하에 얽매이는 삶은 택하지 않겠습니다.

스스로 즐기는 것과, 천하를 대립시키고 있다

나는 천하를 따르지 않고, 욕망을 따르겠다. 나의 즐거움을 따르겠다

중국계 도가 전통
개인과 천하를 대비시키는 비교한다

양주라는 도가 철학자가 있다

내가 정강이의 털 한올 뽑아서 천하가 이롭다 하더라도, 정강이 털을 뽑지 않겠다.

양주는 이기주의자라 할 수 있을까.

양주, 개인의 자발성에서 나온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사회는 약하다.

개인들이 자발적인 생명력으로 이루어진 사회를 꿈꾼다.

노자라는 철학자는
나를 천하마늠 사랑하는 사람에게 천하를 맡긴다.
나를 천하와 동급화

즉, 이념이 지배하는 틀에 같힌 나로 이루어져서는 안된다.

함석헌이라는 독특한 철학자

자기로부터의 혁명을 이야기한 함석헌
세계 최강
강력한 학생운동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학생운동을 주도하는 학생들은
정의와 도덕으로 무장했던 학생운동 학생들
학생운동가 숫자만큼, 우리 사회는 정의와 도덕의 질이 높아졌는가.
함석헌 눈에는 그렇지 않다.

혁명하는 개별자들이 혁명되지 않은 채 혁명을 하고있다.

혁명 이념을 수행만 했지, 혁명가가 혁명되지 않은채 혁명을 했다

그래서 자기로부터의 혁명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자발성, 독립성, 주체성, 주체력 이런것들은 단순히 개인적인 범위 안에서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의 변혁과, 발전과, 진정한 품격에 직접적으로 기원이 된다.

우리가 주의깊게 봐야할 것은, 자쾌 - 스스로 즐기는것, = 자유

자유는 전체라는 집단에 대항하는 나의 활동이 아니라,
나의 자발적 생명력을 근원초로 해서 내 삶을 끌고 가겠다는 것이다.

진흙탕에서 놀고 있는 자기는 일상에 있는자기 인가.

모든 삶의 모든 활동은을 운동하고 있다

운동이란
경계가 계속 중첩되어 일어나는 일련의 과정이다

운동은 한번도 하나의 형식을 고정되어 있지 않다.

내가 이념의 수행자가 아니라
독립적 자발성의 활동을 중시한다는 말은 나는 운동하는 사람이 되겠다. 나는 경계에 서겟다 이런내용이다.

모든 이론 모든 개념은, 한쪽만 이야기하고 있다.

어떤 관념도 대립적은 상태를 동시에 포용할 수 없다.

내가 이념의 수행자가 아니라 내적자발성의 실천자가 되겠다

내가 이념속에 고정되지 않고 사건의 담당자가 되겠다. 라는 말은 경계에 서겠다 라는 내용이다.

무든 이념은 하나의 가치에 집중되어 있고, 믿음, 수행되게 하다.

이러한 이념이 하나의 가치속에 운동하는 개별자를 속박하려고 한다.

이념을 뚫꼬서 자발적 생명력을 소유하려는 사람은 = 윤동의 경게에 선 사람이다.

경계에 서 있는 자기가 움직이는 내적 활동성을 이것은 욕망이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상식상의 이성은
비율을 따지고 계산하고, 집단을 관리한다.

경계에 서서 욕망의 활동성에 자기를 맡길 때 강해진다.

왜 경계를 품은 사람은 강한가?
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경계를 모두 품은 사람은 강할까.
유연하다.
어느 한쪽을 선택한 사람은 그 이념에 속박하게 된다.

정지 있는 이념과 신념에 갖힌 사람은 경직한다.

가치 기준을 자기가 생생하지 못하고 정지한 이념을 가치 기준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그사람들은 1. 항상 왜소한 존재로 자기를 인식하고, 2. 이념을 잘 지키느냐로 자신의 지위와 가치를 결정


살아있는 것유연하다, 죽어 있는 것들은 뻣뻣하다

운동을 내적으로 수용 여부 & 운동과 자신의 일체 여부가
자기가 주인이 되느냐 vs
 자기를 외부에서 지배하는 이념을 자기 주인이게 만드냐 를 결정하게 된다.

생각해보자
내가 이 세계와 관계할 때, 내가 생산한 기준으로 관계(살아가는가)하는가
아니면 학습된 기준으로 관계(살아가는가)하는가?

언제 내가 기준의 생산자로 등장하는가 하는 것이 내가 언제 나로 살수 있는가를 결정한다.

우리는 보통 자기가 이 세계를 살아가면서 윤리적이고 주체적으로 산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보편적 이념이 내면화된 것을 자기 기준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진정한 주체는 세계 운동과 일치하는 주체고 세계운동과 일치하는 이 주체는 경계를 포용하는 주체다.

경계를 포용한다는 것이 무슨뜻인가...

책은 누군가가 쓴 것이다. 여러분들이 읽은 그것은 누군가가 써놓은 것이다.

독서는 읽기와 쓰기가 교차되어 있다.

책을 읽는 이유. 책을 쓸 수 있기 위해,
책을 쓴다, 글을 쓴다, 표현한다

말을 듣는 이유, 말을 하기 위해

생각지도 못한 의문, 남이 말하는 걸 듣다가, 내가 말하는 길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나?

누군가 쓴 책을 읽기만 하다가. 내가 걸어야 될 길, 내가 쓰는 길은 잃어버리지는 않은지


우리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데, 공부하는 목적은 ?

우리가 공부를 하는 누군가가 가르켜놓은 것이다.

나도 언젠가는 가르칠 수 있는 입장이 되기 위함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
1. 우리가 살아가는 일은 정해진 것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2. 정해진것은 학습하는데 제한된 것이 아니라
3. 정해진 것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한번은 정해보는 것이다
나를 표현하는 것이다.

60세에도 배우는 재미에 푹 배우는 재미에 빠졌다

선생님은 앞으로도 창의적으로 되기 어렵겠습니다.

지금 이 나이에 배우는 재미가 그렇게 좋다니. 말이 되는 이야기 입니가.

이제 그만 배우세요. 지금은 자기를 표현하세요.

배우는 것은 아름다는 일이지만. 배우는 것이 습관이 되면 자기푠의 장애를 갖게 된다.

우리가 배우는 것은 다른 사람의 표현을 습득하는 것이다,.
언제까지 이것을 습득하면서 잘하고 있다고 만족할것인가.

배우는 것은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존재해야 한다.

그것이 자기한테 표현의 동력을 못만드는 배움은

표현의 동력을 못 만드는 배움은 경계를 모두 품는게 아니다.

배울때는 표현의 동력이 필요

자기활동은 읽기와 쓰기 사이에 있어야 하고
배우기와 표현하기 사이에 있어야 하고
듣기 말하기 사이에 있어야 한다

이 사이에 있을때 인간은 순수해지지 않고 점잔해지지 않고 거칠어진다.
짐승의 눈빛을 회복한다.

삶 전체를 배우는데 바치고, 누가 말하는것을 정리하는데 바치고, 듣는데 바친다면
자기는 어디에 있는가?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은 경계에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순간, 자기 안에는 경계성을 회복하는 야성도 살아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글을 읽을 때
내가 어떻게 쓸것인가를 생각하면 서 읽어야 한다.

경계에 서있다는 것은 한쪽에 수동적으로 갇힌게 아니라, 경계에서 자기로 살아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을 일반적으로 살아있다고 한다

자신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용망의 주인이 된다는 것이고, 욕망의 실행자가 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말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표현하는 사람이고

삶의 궁극적인 동력의 출처는 나를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를 침해하는 어떤것에도 도전하는 것이다,.


자의 주체성 나의 존재성을 존엄을 침해하는 것에는 저항할 수 있어야 한다.

죽기전까지 해서는 안될 두가지,
1. 충고하지
2. 남의 충고 듣기


충고가 제일 듣기 싫은 최진석 교수

그대신 최진석교수도 누구한테 절대 충고하지 않는다.

친구를 돌보는 것보다 나를 돌보는게 더 바빠요.

충고 들었다고 자기 갈길을 이리저리 바꾸지 맙시다.

한번 자기 멋대로 살아봅시다.
경계에서서 내가 내 주인으로 살때 느끼는 자족감 느껴보자

죽기 전까지 버려서는 안될 두가지
1. 자기 자신에 대한 무한 신뢰
2. 자기 자신에 대한 무한 사랑

자기를 신뢰하지 않는 이유, 자기를 이삿짐같이 생각하기 때문임.
1. 내적 자발성에서 생산되는 기준에 의존하지 않고
2. 자기 밖에 이미생산된 기준에 견주어 보기 때문이다.

왜 자기를 사랑하지 않나.
스스로를 비하하기 때문이다.

보편적 이념. 기준은 조백(찌꺼기 이다)

찌꺼기에 빗대서 자기를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아무것도 없다

우리를 지해하는 보편적 이념 기준은 시간이 지나서 가공물이다.

욕망의 담당자로 경계에 서있는 주체로 자신을 돌아보자
그 자신은 여러분들 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고 훨씬 자유롭다

이렇게 강하고 아름답고 빛나는 자기를 절대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소홀히 관리되지 않은 자기는 자기한테 가장 존엄한 존재이다.
존재는 존엄한 활동을한다.
뇌물이 거절할 수 있게 된다.

윤리 규정을 지키는 자기는 뇌물의 유혹에 넘어가지만.
자기 존엄을 지키는 주체는 뇌물을 받지 않는다.

윤리적 힘을 가진 존재로 재탄생

여러분이 얼마나 아름답고 가치있고 자유롭고 강한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확인처가 모든 창조적 동력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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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생각의 힘을 키우는) 고전 공부법


고전을 읽음으로서 생각의 힘이 커질 수 있을것인가? 예전의 나였으면 당연히 '그럴리가', 혹은 '어떻게?' 라는 답을 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정확히 말할 수 있다. 고전을 읽으면 '내면의 긍정적인 신호' 가 분명히 나를 변화시키게 된다. 그이유는 잠시 후에 이야기 하도록 하겠다.

고전을 쓰거나 고전에서 다뤄지는 사람들은 세계 최고의 석학들이다. 이를테면,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공자, 등이 이에 해당되지 않을까 싶다. 이 분들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워렌버핏, 빌게이츠 등과 비교될 수 있을까. 화이트 헤드라는 하버드 교수는 ( 영국에서 수학교수를 하다가 미국 하버드로 건너가 철학교수가 되었음) "서양의 몇 천년의 철학사는 모두 다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또한 세계를 완전히 바꿔버린 '스티브잡스' 역시 "소크라테스와 반나절을 보낼 수 있다면, 애플이 가진 모든 기술과 바꾸겠다고" 라고 하며 석학과의 대화를 절실히 갈구하였다.

다시 처음 질문에 답을 해보자, 이토록 저명한 천재 중의 천재들이 쓴 책 (즉 고전,)을 읽었을때, 어찌 아무런 변화가 없을 수 있으랴. 베스트셀러, 자기개발서 100권 읽는 것보다 고전 한권을 읽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지하게도 지금까지 나는 고전을 철저히 멀리하여 독서를 하였다. 또 한번 반성을 해본다.

이 책은 저자가 추천하고자 하는 고전을 소개하여, 고전의 재미를 증진시켜 주는 고마운 책이다.
따라서, 고전 입문자에게 추천하는 바이다. 오늘 밤에는 고전읽으며 석학과 대화를 시도해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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