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거리의 인문학


도서관의 인문학 코너에서 발견한 한 책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노숙인'이다. 노숙인과 인문학이 만나면 어떤 일이 생길까? 무언가 드라마틱한 일이 생길것이라고 짐작되지 않는가?

우리가 알고 있는 '인문학' 은 고대 그리스부터 시작해서 발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인문학은 인간답게 살기 위한 학문, 혹은 인간이 누려야 할 가장 기본적인 수준의 교육으로 간주되었으나, 그리스에서는 이러한 학문을 오직 '시민' 계급만이 익힐 수 있었다고 한다. 노예 계급은 '기본적인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없었다.
인문학 이란 것이, 인간에 집중하고 인간본연의 것을 연구하는 학문인것을 감안하면 이는 굉장히 모순적인 사실이다. 문명이 굉장히 발전하었던 나라였던 만큼, 교육의 부재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며, 이를 이용하여 계급을 분리 및 권력의 유지를 용이하게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사실을 세종대왕은 몰랐을까. 세종대왕은 일반 백성임에도 '앎'은 평등해야 한다고 하여 어려운 한자를 대신할 '한글'을 창제하였다. 뜻 자제도 엄청난 행위이지만 결과물(한글) 역시 어마어마하다.

이처럼 교육의 힘은 엄청나다. 일본은 우리나라에 침략하여 제대로된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다양한 방해를 하였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지금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효과를 이용하고 있는 기업이 있는것 같다. 국내 모 대기업에서 생산직 직원을 채용할때 고졸만 채용한다고 한다. 전문대 졸도 안되고 오직 고졸만 채용한다. 이 역시 무언가 다른 생각을 할 만한 사람을 안뽑겠다는 의지로 밖에 이해가 된다.

약 8년전 성프란시스 대학이라는 곳이 우리나라에 설립되었다. 이 대학의 학생은 노숙인이다. (나는 사실 노숙인에 대해 굉장히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반성했고,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반성을 하게 된다.) 노숙인을 대상으로 인문학 즉, 철학을 가르치고 교사와 학생들이 서로 토론하고, 미술작품을 감상하고, 시를 쓰고, 경복궁을 관람한다는 것이다. 취지는 좋지만 가능할까라는 의구심의 드는 기획이라고 판단하기 싶다. 하지만 책이 출판된 이 시점에서 보면, 쉽게 예상되는 결론이겠지만 노숙인들은 변화했다. 자존감을 다시 회복하게 되었고, 글을 쓰는것은 물론이거니와 시를 쓰기도 하였다. 몇몇은 서울역을 떠나 임대주택에서 자립하여 일을 하게 되었다.


( 사실 이 기관은 미국에서 최초로 시작되었다. 마약중독자, 알코올 중독자 들이 학교를 졸업하여 대학원에 입학하기도 하고, 치과의사가 된 경우도 있다고 한다. 생각만해도 소름끼치는 결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미국만큼의 크게 변화된 사례까 없다고 한다. 왜 그럴까. 교육 방침이 잘못된 것일까. 교육받는 노숙인의 문제였을까. 아니면 우리나라에서는 미국보다 밑바닥의 '노숙인'이 사회의 일원이 되기 어려운 구조라서 그런걸까.)

노숙자들에게 음식을 주고 옷을 나눠주는것은 단기적으로는 도움이 될 지라도 장기적으로 노숙인이 일반 사회의 일원이 되는데에는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 오히려 현실에 안주하게 만드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즉, 결론적으로 노숙인과 인문학과의 만남은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느 책에서 인문학의 기본은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것을 본적이 있다. 이를 비추어볼때, 성프란시스대학이야 말로 인문학의 가르침을 제대로 실현하고 있는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나는 멀리서나마 성프란시스대학의 교수님들 관계자 분들에게 진심으로 존경을 표현하고 싶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부터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하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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