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사색이 자본이다


사색이란 무엇일까. 솔직히 나는 '사색' 이란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알지못했다. (가끔 책을 읽다가 접하긴 했지만 단순히 '곰곰히 생각하는것' 정도로 정의를 내렸던것 같다) 아니 책을 다 읽은 지금 이 시점에도 사색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겠다.

그렇다면 생각과 사색의 차이는 무엇일까. 평범한 사람은 세상을 바라볼때 1) 보이는것만 보고, 2) 보이는것만 본다. 반면 사색가는 시선을 바꿔 정보를 결합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여기저기를 자유롭게 건너가며 모든 경계를 허물고 결국엔 아예 지워버리는 사람"이 바로 사색가라고 한다.

작가는 '사색할 줄 모르는 사람은 세상의 노예로 살아가게 된다!" 라며 독자를 자극한다. 다른말로 '사색할 줄 모르는 사람은 깨어있지 않은자와 같다' 라고 말할 수도 있을것 같다. 나 역시 '깨어 있는것' 의 중요성을, 아니 정확히 말하면 '깨어있지 않은 것'에 대한 위험성을 잘 알고 있다. 나 스스로가 20대 중반까지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생각하지 않고 고등학교 생활을 했고, 생각하지 않고 대학을 다녔고, 생각하지 않고 회사를 다녔다. 인문고전과 같은 책은 어려운 책으로 간주하여 단순한 자기계발 서적만 읽던 시절이었다.

지금 나는 절실히 사색이 필요하다. 사색이란게 무엇인지, 어떻게 하는것인지 알고싶다. 저자처럼 실신할정도로 치열하게 사색에 몰두하고 싶고, 아인슈타인처럼 무엇인가 대단한 발견을 하고싶다.
사색의 정의를 찾아보면, "思 생각할 사, 索 찾을 색" 으로, 사물의 "이치를 따져 깊이 생각함" 이라고 한다.

사색의 정의를 이해하기 위해 검색을 해보았다.

  1. 절벽 아래에 있을때 '아 저기를 어떻게 올라가나' 라고 생각하면 잡념, 잡생각이고, 어떻게하면 저길 올라갈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면 사색이 된다. 문제가 생겼을때 그것을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지 조사하고 탐구하는 생각은 사색이라 할 수 있다.
  2. 사색.. 사실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고 이치를 따져본다는건 어려운 일이다. 사색에 빠지다 라는 것은 마치 사랑에 빠지듯이 주변에 것들을 제대로 인지할 수 없을 정도로 오로지 그 생각에 깊게 깊게 빠져들어 이치들을 따져본다는 것이다.
  3. 사색은 인간의 특권이다. 그린 문제가 생기면 잠시 멈추고 사색하라. 그러면 행복해 질것이다.
여전히 어렵긴 하지만 어렴풋이 감이 잡히는것 같다.

지금 나는 막 부화하고 있는 병아리와 같이 세상을 향해 힘껏 몸짓하고 있다. 그 동안 갇혀있던 시간이 억울해서라도 더욱더 빨리 세상을 맞이하고 싶다. 그래서 책을 시간나는대로 마구 읽고 있다. 아직은 햇병아리 독서 수준이지만 마음만은 공자의 제자라도 된듯하다. 아직은 '진짜' 세상의 햇살이 낯설기는 하다. 하지만 설렌다. 어떤 세상이 나타나게 될지.

이 글을 쓰고나서 바로 신영복 작가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을 보려 한다. 책을 읽고나면 뒤이어 나뭇가지가 여러갈래로 갈라지듯 보고싶은 위시북리스트가 생긴다. 그것이 책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 20151020 내용 추가 -
네이버에 어떤 사람이 나와 비슷한 고민을 기재한 페이지를 보았다. 아래 글은 '어떻게 사색을 하는것일까' 라는 나의 질문에 가장 비교적 정확하게 답변해주는것 같다. 

"사색은 한마디로 어떤 글을 비판적으로 읽는 것입니다
인문고전의 어떤 글을 비판적으로 읽는 것입니다. 인문고전의 어떤 내용이 눈에 들어 왔다면 그 내용을 그냥 두루뭉술 읽는게 아니라 어금니로 잘근 잘근 삼키는(이해하는) 겁니다. 어떤 이는 이걸 '재해석' 이라 말합니다. 즉, 재해석 = 잘근잘근 씹기 = 비판적독서 입니다.

사실, 고전을 반복해 읽으라는 것도, 잘근잘근 씹어 읽으라는 것이고, 필사하라는 것도, 베껴 쓰되 잘근 잘근 음미하며 써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나의 피가되고 살이되기 때문입니다. 이같은 비판적 독서는 인문고전에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모든 학습 대상은 이렇게 공부해야 옳습니다.

그런데 이같은 '잘근 잘근 씹듯이' 책을 읽으라는게 쉬운 게 아닙니다. 대체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잘근 잘근 씹는 도서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앞서 이지성씨는 인문고전을 사색하라 주문하고 있지만, 아무리 사색하라 주문해도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재해석' 으로서의 사색을 하려면 해당 분야의 '일가견' 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일가견은 해당 분야에 대한 '관점, 의견, 주관, 이해'를 말합니다. 이런게 있어야, 즉 일정한 정도의  전문적 견해가 있어야 재해석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 같은 일가견 없이는 그 어떤 좋은 텍스트를 줘도 무슨 소린지 알지 못합니다. 한마디로 사색이 안되는 겁니다.

이런말 들어보셨을 겁니다. '행간을 읽어라' 어떤 글을 읽을 때 한 줄 한 줄 그게 다는 아니죠. 바른 사색가는 줄과 줄 사이 즉 행간에 숨겨진 내면의 풍부한 의미를 추론할 수 있습니다. 이게 사색입니다. 이런 사색가는 해당 글에 대한 배경지식이 풍부하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의미를 읽어 낼 수 있는 겁니다.

따라서 일가견 없이 사색을 한다는 것은 빈맷돌을 돌리는 꼴입니다. 콩이라든가 무슨 내용물을 넣어야 콩비지가 나오는 건데 빈맷돌만 돌리지 헛수고죠. 먼지만 날립니다.

결론적으로 어떤 글을 읽기 전에 해당 분야에 대한 '일가견'을 먼저 습득해야 합니다.
그래야 올바른 의미에서의 '사색'이 가능한 겁니다.

(출처를 분실했습니다.. 문제가 된다면 삭제하겠습니다.)



No comments

0 개의 댓글:

댓글 쓰기

Popular Posts

Powered by Blog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