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역사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역사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아르메니아 대학살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지만, 세계 곳곳에서는 전쟁이 한창이다. 그만큼 인명피해 역시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오늘 정리 할 아르메니아 역시 '아제르바이잔'이란 나라와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아르메니아의 대학살
오스만투르크 제국(현재 터키)이 아나툴리아 동부에서 거주하는 기독교계 아르메니아인을 두 차례(1894~94, 1915~16)에 걸쳐 학살한 사건이다. 이 사건을 현대의 첫 조직적 집단살해사건으로 인정하는 견해가 대다수이나, 터키 정부에서는 이를 강제이주에 따른 희생이라고 주장하면서 집단살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아르메니아 집단학살 또는 아나톨리아 집단학살 이라고 불려진다.



발단
1894~94
19세기 말, 러시아가 남하정책을 펴며 남카프카스를 점령하자 1877년 러시아와 오스만제국 간에 전쟁이 일어났고, 이로 인해 러시아가 아르메니아인 거주 지역의 북동부까지 점령한 것이 대규모 학살사건의 시작이 되었다.

러시아-투르크 전쟁을 계기로 독립을 희망하던 아르메니아인들은 러시아를 지지하며 1894년 오스만제국에 대한 반란을 일으켰다. 이러한 과정에서 '아나톨리아' 동부에 거주하던 이슬람주의자와 기독교계인 아르메니아인 간에 충돌이 일어났고,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아르메니아인에 대한 무차별 학살과 탄압이 이뤄졌다.

1915~16
1914년 세계 1차대전이 발발하였고 독일∙이탈리아∙오스트리아의 3국동맹과 영국∙프랑스∙러시아의 3국협상 간의 대치구도가 형성되었다. 오스만제국은 러시아가 속한 연합국에 맞서기 위해 3국동맹에 가담하였다. 이때 러시아 접경에 위치한 아르메니아 혁명세력이 오스만제국을 공격하고 1915년 영국군이 터키의 갈리폴리 반도에 상륙하고, 곧 콘스탄티노플마저도 함락될 위기에 놓였다.

그러자 터키 정부는 아나톨리아에 사는 아르메니아인들을 그들의 집단거주지에서 터키내지로 강제 이주시켰다. 전쟁 중인 자신들의 뒤에서 독립을 위해 봉기할지 모른다고 판단한 것이다. 기차도 연결되지 않은 '죽음의 행진' 과정에서 아르메니아인들은 추위와 기아, 질병, 강제노동 등으로 쓰러져갔다. 살아남은 다수의 아르메니아인들도 이라크∙시리아∙팔레스타인 등으로 강제 추방되었다.






제노사이드 [ genocide ]
국제 사회에서는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제노사이드와 연관짓곤 한다. 제노사이드는 유대인 출신의 폴란드 법학자 라파엘 렘킨이 처음 제시하였고, 이는 1948년 유엔협약을 통하여 국제적 인정과 동의를 얻게 되었다. 이 협약은 제노사이드를 "민족적, 인종적, 혹은 종교적으로 구성된 주민집단의 전체 혹은 일부를 몰살시키고자 시도하는 행위" 로 정의하였고, 인종학살과 인간성에 반하는 범죄행위를 공개적으로 부정하거나 악의적으로 정당화시키는 사람을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하였다.

그러나 각 국가와 학자의 입장에 따라 희생자 집단의 성격, 살해의 의도와 범위 등에 대한 판단의 차이가 필연적으로 도드라짐으로써 국가간 이견충돌을 야기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그리고 갈등

오스만제국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후 1923년 터키공화국이 되었다. 현재 터키 정부는 이 사건을 오스만제국을 침공한 러시아군에 직∙간접적으로 가담했던 아르메니아인 전투원이나 스파이들의 죽음이라고 설명한다. 즉 이때의 희생자가 대부분 아르메니아인인 것은 전시 상황에서 최전선의 혼란으로 인한 불행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피해자 수에 대한 견해차이도 존재한다. 터키 측은 20만 명 정도로 추산하지만, 아르메니아 측은 2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한다. 미국∙유럽∙일본 등의 일부 연구자들은 60만명에서 80만 명 정도라는 견해를 내놓고있다.

2006년 프랑스 하원은 아르메니아 학살을 '제노사이드'로 규정하며 이를 부인하는 사람을 처벌하는 법안을 절대 다수의 지지 속에 통과시켰다. 이에 터키는 강하게 반발했으며 자국의 국제입찰에 프랑스 기업의 참여를 배제하고, 이슬람인들에게 프랑스 제품의 불매운동을 호소는 등의 반 프랑스 행보를 벌이고 있다.
참고로 프랑스는 홀로코스트의 공개적 부정을 처벌하는 법안을 1990년 통과시켰고, 2001년 유럽의 노예제를 '반인률 범죄'로 인정하는 법률을 통과시킨 바 있다. 


참조 사이트
  • 이미지1 출처 - http://terms.naver.com/imageDetail.nhn?docId=973121&imageUrl=http%3A%2F%2Fdbscthumb.phinf.naver.net%2F1967_000_1%2F20120502102150747_JBUTBIHDN.jpg%2Fba2_2-2-230_i1.jpg%3Ftype%3Dm4500_4500_fst_n%26wm%3DY&cid=43667&categoryId=43667
  • 이미지2 출처 -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81112.html
  •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81112.html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28631&cid=50299&categoryId=50299
  • https://ko.wikipedia.org/wiki/%EC%95%84%EB%A5%B4%EB%A9%94%EB%8B%88%EC%95%84_%EC%A7%91%EB%8B%A8%EC%82%B4%ED%95%B4#.ED.94.BC.ED.95.B4.EC.9E.90_.EC.88.98

Continue reading

No comments

[경제사]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그들은 누구인가


위 사진은 대표적인 비둘기(Doves)파인 벤 버냉키(전 연준 의장) 와 매(Hawks)파, 재닛 옐런(현 연준 의장)의 성향을 잘 묘주고 있다. 벤 버냉키는 '헬리콥터 벤' 이라 불리는 대표적인 비둘기 파이다. 위 사진에서도 역시 돈을 뿌리고 있는 벤을 볼 수 있다.
"경제를 살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헬리콥터를 타고가서 돈을 하늘에서 뿌리면 된다. 그러면 세계경제는 자연히 살아난다."
- 벤 버냉키

반면 재닛 옐런은 통화량과 양적완화 축소를 주장하는 매파이다. 실제로 재닛 옐런이 연준 의장이 된 이후 양적완화 출구전략을 펼치면서 양적완화를 종료하게 되었다.

1. 연방준비제도이사회 [ Federal Reserve Board ] 란?

연방준비제도이사회(줄여서 연준)는 1913년에 창설된 연방준비제도(FRS:Federal Reserve System)의 결정기구이다. 이들은 미국 내 통화정책의 관장, 은행∙금융기관에 대한 감독과 규제 등의 역할을 하고 있다.
FRB는 재할인율(중앙은행과 시중은행 간 여신금리) 등 금리결정, 재무부 채권 매입과 발행(공개시장 활동), 지급준비율 결정 등의 권한을 가진다.

쉽게 말해, FRB는 미국의 중앙은행이다. 우리나라의 한국은행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조직이다. 차이가 있다면 FRB는 공기업이 아닌 사기업이라는 것이다. 록펠러, JP모건, 로스차일드와 같은 유대계 대자본가들이 이들이 설립한 민간기관이다. (흔히 빌게이츠가 세계 1~2위를 다투는 부자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이들 유대계 자본가들은 정확히 계산되지 않을 정도의 엄청난 자본을 보유하고 있다.) 이 때문에 FRB의 금리결정 등 통화정책 권한은 철저하게 독립적으로 행사된다.

어떤 이는 연준 의장이 대통령에게 선출된다는 것을 내세워 공기업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대통령의 의장 선출권은 매우 협소하다. 오직 7명의 연준 이사진 내에서만 의장을 선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왜 이들을 알아야 하는가?

민간조직인 FRB는 너무나도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FRB 의장은 세계 경제 대통령으로 불릴 정도로 금융정책에 관해서 전 세계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살아있는 권력의 최상층에 위치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이유는 이들이 크게 1) 금리 (이자율) 결정과 2) 통화량을 결정 에 대한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두개의 권한은 같은 성격을 띄고 있긴 하다.)

이들은 이러한 권한으로 말 그대로 세계경제를 좌지우지 할 수 있다. 더구나 세계제일의 패권국가, 미국의 중앙은행이기 때문에 더욱 영향력이 클 수 밖에 없다. 이들이 세계를 움직이는 방법을 알아보자.

2-1 기준금리

i) 만약 기준금리가 10% 정도로 높다면, 시중은행은 10% 보다 높은 이자율을 채택할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이자를 받기 위해 예금을 많이 하게 될 것이다. 그로인해 시장에 통화량이 줄어 침체되게 된다. 사고팔고 하는 행위가 일어나지 않는 다는 것이다.

ii) 반면, 기준금리를 대폭 낮추면, 시중은행도 역시 낮은 이자율을 적용할 테고, 사람들은 "은행에 예금하느니 다른거 하겠다' 라는 생각으로 부동산이나 주식에 투자하게 될 것이다. 자연히 부동산, 주식의 가치가 높아질 것이다. 그리고 시장에 통화량이 증대하면서, 물가가 상승하면서 뛰고 인플레이션이 찾아오게 되는 것이다.

이것처럼 기준금리 만으로 불황과 호황, 즉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다.

2-2. 통화량 조절(양적완화)

그런데 예외상황이 있다. 지금의 미국과 일본처럼 실질적으로 제로금리인데도 경기가 부양되지 않는 경우이다. 제로금리를 적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통화량이 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FRB는 양적완화를 통해 시장의 통화량을 직접적으로 조절한다.

전통적인 통화량 조절 방법은 중앙은행이 일반 시중은행에 돈을 넣어주면 시중은행이 기업이나 개인에게 돈을 대출해주는 방법을 사용한다. 경제가 극심히 침체되어 있는 상황인 경우에는 효과가 없었다. 때문에 FRB는 직접 주식시장서 채권이나 주식을 구입하는 양적완화'를 하게 되었다. 직접적으로 시장에 통화를 공급하는 행위이다. FRB은 이러한 예외 상황에서도 '양적완화' 라는 독특한 정책을 수행함으로써 경제를 활성화 시킬 수 있다.

3. 그들이 세상을 쥐락펴락 하는 방법

FRB는 창립 직후부터 지속적인 금리인하 정책을 고수했고, 이는 다우지수와 부동산 시장의 동반 상승 결과를 가져왔다. 이에 1928년 FRB는 첫 번째 출구전략을 실시했고, 그 결과는 세계대공황으로 나타났다. 500포인트였던 다우지수는 10분의 1 수준인 50포인트로 폭락했고, 건실했던 여러 기업들이 차례로 무너지고, 대량 실업이 발생했다.
따라서 FRB는 미국의 금본위제까지 폐기하면서까지 제로금리와 통화량 확대책, 즉 양적 완화를 실시한다.
(금본위제 : 화폐의 가치를 금의 가치로 나타내는 것으로, 금본위제를 채택했던 당시 미국이 화폐를 찍어내기 위해서는 그 가치만큼의 금을 사서 보유해야만 했다.) 경제학자 케인즈의 수정자본주의 이론에 입각한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이 성공하면서 1930년대 미국은 연 10% 이상의 국가성장률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경기 과열을 염려한 FRB의 세계경제수반들은 이제 세 번째 출구전략에 돌입하게 되는데, 이 또한 주식과 부동산 시장 동반 폭락을 야기했다.
1990년대 미국의 카드대란이 일면서 시행한 네 번째 양적 완화, 그리고 1994년의 네 번째 출구전략의 결과는 달랐을까? 애석하게도 다르지 않았다. 미국의 주가와 부동산은 역시나 휘청거렸고, 이 풍파에 당시 속까지 썩어있던 우리나라도 3년 후 IMF라는 커다란 위기를 맞게 된다.

근현대의 세계 경제의 흐름을 보면 FRB의 기준금리와 양적완화 정책으로 인해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이 반복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FRB가 금리를 낮추면 인플레이션이 찾아와 경제가 호황되었고, 금리를 올림으로서 디플레이션을 유발하여 세계경제가 침체되었다. 제로금리임에도 경제가 활성화되지 않는 경우에는 각종 채권을 매입함으로서 경제를 다시 살렸다. (실제로 미국은 3차례의 양적완화를 통해 총 4조달러의 돈을 시장에 공급했다.)

과연 경기침체와 호황이라는 많은 변곡의 역사속에서 FRB 의 패착들은 그들이 세계경제를 안정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겪을 수 없는 시행착오의 결과일까? 혹시 FRB는 그들의 막강한 권한으로 침체와 호황의 곡선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고 있지 않을까?

만약 디플레이션과 인플레이션 자체가 FRB의 목적이라면, 인플레와 디플레를 반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세계의 권력을 장악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 엄청난 부자가 되는 것이다.  실제로 록펠러나 버나드 버럭과 같은 사람들은 1929년 대공황이 오기전에 주식을 다 팔았다고 한다. 그들은 막강한 권한으로 디플레이션이 오기전 비싸게 주식을 매수하고, 인플레이션이 오기전 헐값의 주식을 매도함으로써
부를 긁어모으고 있는게 아닐까.

4.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창설

1913년 당시에도 FRB는 이미 금융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모건은 은행이 파산할거라는 소문을 퍼트렸고, 국회의원들 중 일부는 금융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는 중앙은행이 있을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 이후 3년 후에 모건은 재벌들을 자신의 별장으로 불렀고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비밀회동을 가졌다. 이들은 연방준비법을 입안시키기 위해 많은 국회의원들을 섭외한다.

우드로 윌슨 (28대 대통령)을 은행가들이 밀어주기로 약속하고 돈을 지원해 준다. 결국 윌슨이 대통령이 당선되고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때 연방준비법이 날치기 통과로 통과했고 윌슨이 급하게 서명하게 된다.연방준비법이 통과되고 연방준비은행이 반들어질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뒤늦게 법안의 의미를 알게된 윌슨은 죽기전에 대국민 사과를 하였다.

"위대하고 근면한 미국은 금융시스템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금융시스템은 사적목적에 집중되어 있다. 결국 이 나라의 성장과 국민의  경제활동은 우리의 경제적 자유를 억압하고 감시하고 파괴하는 소수에 의해 지배된다. 우리는 문명세계에서 가장 조종되고 지배되기 쉬운 정부를 갖고 있다. 자유의사도 없고 다수결의 원칙도 없다. 소수지배자의 의견과 강요에 의한 정부만 있을 뿐이다. "

5. 이들을 누가 견제 할 수 있는가?

미국의 건국아버지들은 이런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처럼 막강한 권한을 사기업으로 두어선 안된다고 생각하고 오랜기간 이들과 싸웠다. 그리고 이들과 대립했던 대통령은 암살되거나 암살의 위기가 있었다.
토마스 재퍼슨(3대 대통령), 앤드류 잭슨(7대 대통령), 링컨 (14대) 까지 이들을 견제 했다.

"금융기관은 군대보다 위험하다 만일 국민들이 사립은행에게 통화발행권을 넘겨주게되면, 그들은 한번은 인플레이션으로 다음번은 디플레이션으로는 국민의 잔여가 거지가 될 때까지 그들의 재산을 강탈할 것이다."
- 토마스 제퍼슨 (미국 3대 대통령)

"화폐권력은 평화시에는 국가를 잡아먹으려고 하고, 역경의 시기에는 반역을 꾀한다. 그것은 군주제보다
더 포악하고 독재보다 거만하며 관료제보다 더 이기기적이다."
"나는 가까운 미래에 나를 무력하게 하고 내 조국을 위험 앞에 떨게 하는 위기가 닥쳐올 것을 알고 있다. 재산과 부가 소수의 손에 집중되고 공화국이 파괴될까지 자본력은 대중에게 피해를 끼치며 그 권세를 확장할 것이다."
그리고 1865년 링컨은 암살당했고 배후로 중앙은행일것이라고 추측했다.

루이스 맥패든 의원은 이러한 금융연합을 신랄하게 비난했고, FRB를 해체하려고 노력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두번의 암살 위협 끝에 결국 연회장에서 독살당하게 된다. 이미 FRB에 통제당하고 있던 언론은 이 사건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고 한다.

존 F 케네디도 FRB와 대립했던 대통령 중의 한명이다. 그는 FRB를 무력화하려는 여러가지 시도를 했는데 대표적으로 '제 11110행정명령'의 효력을 발휘하여 FRB를 해체하려고 했다. 또한 당시 진행중이던 베트남전쟁을 중단하려 했다. (당시 FRB 이사진들은 군사복합체의 이익고리를 통해 많은 이득을 취하고 있었다고 한다.) 또한 새로운 화폐인 그린백(100달러)을 찍을 수 있는 권리를 FRB가 아닌 재무부에 부여하려고 했다. 결국 1963년 11월 22일 텍사스 주 댈러스 시내에서 카 퍼레이드를 하던 케네디는 오스왈드가 쏜 총알 3발을 받고 수많은 대중들 앞에서 사망하게 된다.  (음모론자는 이를 FRB에 의한 공개처형이라고도 표현한다.) 그 다음 집권한 45대 대통령 린든 존슨은 '제11110 행정명령' 을 취소하고 그린백 통화 발권 권리를 FRB에 넘기게 된다.

공교롭게도 지금까지 FRB에 대립각을 세우고 달려들어 싸웠던 정치인들은 암살의 위기를 맞거나 암살당했다. 45대 린든 존슨 대통령 이후로 현 대통령인 오바마가 집권하기까지 FRB를 제재하는 세력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FRB는 막강한 자금력으로 나날이 그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으며 금융, 언론, 학계 할것 없이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보다 언론자유정도가 현저히 높은 미국의 언론들조차도 FRB의 실체에 대해 이야기하기 꺼리는것이 이에 대한 대표적인 근거라고 할 수 있겠다.

참고 사이트
-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방송 & 도서
- 사진 출처, http://www.koreaittimes.com/story/34476/%EA%B2%BD%EA%B8%B0-%EB%B6%80%EC%96%91%EC%9D%80-frb%EC%9D%98-%EC%82%AC%EB%AA%85-%EC%97%B0%EB%A7%90%EA%B9%8C%EC%A7%80-%EC%A3%BC%EA%B0%80%EB%8A%94-%EA%B0%95%EC%84%B8
- http://blog.daum.net/atinfdklj/55

Continue reading

No comments

[세계사] 제1차 세계대전은 일본에게는 절체절명의 기회


지금은 정체되어 있지만 한때 세계의 강대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이웃나라 일본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당시 일본은 어떻게 선진국이 되었는지와 세계 정세를 간단히 정리하였다.

일본은 '영일동맹'을 빌미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다. 애초에 영국은 아시아에서 독일 무장 상선을 수색하는 것에 한정해서 일본의 참전을 요구했지만, 일본은 이를 뛰어넘어 전면 참전을 강행했다.

세계대전으로 유럽열강이 아시아에 눈을 돌릴 여력이 없음을 확인한 일본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여 독일이 점령하고 있던 산둥반도를 공격하고 독일의 식민지이던 남양군도(마리아나 제도)를 점령했다. 이때 중국은 위안스카이에게 '21개조 요구사항'을 강제하여 중국을 침탈하기 '시작'했다.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일본의 자본주의는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미국 다음으로 유럽의 전쟁으로 특수를 만끽했던 나라가 일본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일본의 경제 불황과 재정위기를 한 번에 떨쳐내었다. 전쟁 전(1914년) 11억엔의 채무국이었던 일본은 전쟁후(1920년) 28억엔의 채권국이 되었다. (28억엔이면 당시 조선의 GDP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당시 전쟁중이던 유럽 상품을 대신하여 면직물 등의 일본상품이 아시아 시장에 진출하여 무역은 압도적인 수출초과가 되었다. 세계적으로는 선박의 부족사태가 일어나면서 일본의 해운업∙조선업은 공전의 호황을 누리게 되고 일본은 세계 제3위의 해운국이 되었다. 철강업, 화학공업, 전력사업 등 중화학 공업이 발전하면서 1차대전 이후 비로서 처음으로 공업생산액이 농업생산액을 앞지르게 되었다. 또 유럽으로 대량의 군수품을 팔게 되면서 일본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무기 수출국이 되었다. 당시 일본은 나리킨(벼락부자)들이 속출하면서 나리킨의 전성시대가 된다.

한편 전쟁에 의한 호황은 자본가에게 막대한 이익을 주었지만 일본 제국주의의 모순이 노출되기 시작했고, 급격한 경제 성장에 따라 사회적 갈등과 모순은 심화되어 갔다.


참고 사이트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826091&cid=42998&categoryId=42998
- 사진 출처, http://blog.naver.com/alsn76/220562798957

Continue reading

No comments

[경제사] 민주당(Democratic), 공화당(Republican)

연일 뉴스에서는 미국 대선에 대한 내용이 보도되고 있다. 세계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미국이니만큼 최소한의 내용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내용을 정리해 보았다.

1. 공화당과 민주당의 차이점

공화당은 정부가 최소한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정부가 규제를 최대한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소한의 사회보장에는 동의하지만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을 하류층들이 스스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생력을 키우지 못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민주당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사회의 약자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장 경제는 부작용이 크기 때문에 환경규제나 금융규제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실례로, 민주당은 정부가 적자를 더 보더라도 시장에 최대한 많은 돈을 풀어 경제를 활성화 하자고 했고, 공화당은 오히려 정부지출을 줄여야 민간쪽에서 돈이 많이 돌 수 있기 때문에 긴축재정을 운영하자는 정책을 내놓았다.  민주당이 큰 정부를 선호한다면, 공화당은 작은 정부를 선호한다고 할 수 있다.

< 긴축재정  >
- 정부가 예산을 편성할 때 지출을 억제하고 공채를 정리하며, 신규 모집을 하지 않는 재정 정책이다.
- 경기가 과열될 때 경제를 안정시키기 위해 정부 지출을 줄여 과열된 경기를 억제할 수 있다.
- 반대의 의미로 확장정책은 경기가 불황일 때 시중에 통화량을 많이 유통시켜 위축된 경기를 회복하려는 재정 정책이다.

2. 지지계층의 차이
공화당은 상류층과 중산층의 지지를 받는다. 즉 경제적 여유가 되는 계층은 낮은 세율을 선호하는 공화당을 지지하는 편이다. 특히 중산층 백인들이 공화당을 선호하는 편이다.

반대로 민주당은 근로자나 사회적 약자들의 지지를 받는다. 이 때문에 흑인이나 히스페닉, 이민자들이 민주당을 지지한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미국에 상당히 많이 이민하여 살고 있는데 이들 역시 민주당을 지지하는 편이다. 

3. 미국 대선이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
양 당의 국방에 대한 정책이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이 부분이 우리나라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공화당은 '강한 미국'을 지향하고 있으며, 민주당은 '평화적인 미국'을 지향한다. 이 때문에 공화당은 미군에 대한 지원에 적극적인 편이다. 그리고 외교정책을 펼칠 때에도 전쟁을 염두하는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반면 민주당은 타협을 지향하면서 외교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한다. 


미국 대통령 선거의 각 당 후보를 뽑기 위한 경선에서 각각 민주당과 공화당 선두를 유지하고 있는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후보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후보를 보면 양 당의 차이를 조금 이해 할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한국은 하루에 10억 달러씩 번다.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 한국을 보호해주기는 하겠지만, 그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말할 것"

"미국 의회가 행동에 나설 때까지 무슬림의 입국을 전면적으로 완전 통제해야 한다" 

PS. 트럼프의 이러한 행동이 공화당의 대표적인 모습이라고 말하긴 어려울곳 같기도 하다. 그의 성향이 굉장히 한쪽으로 치우친 극우의 모습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참조
- 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263466
- http://cafe.naver.com/longhornuhak/72
- 사진 출처, http://www.voakorea.com/content/article/3212747.html

Continue reading

No comments

Popular Posts

Powered by Blogger.